[서재정] '엘리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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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2-01 14:46 조회34,4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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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대천의 원수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는 살 수 없는 ‘주적’과 평화롭게 사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그렇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나서도 화해할 수 있다. 적대관계도 평화로운 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 무수한 역사의 사례가 있다. 국제관계에서 전쟁만이 유일한 상수라는 것은 역사의 왜곡이다. 영원한 전쟁이란 없다. 원수도 사이좋은 이웃이 된다. 심지어 한 민족, 한 국가를 이루기도 한다.
오늘날 독일과 프랑스가 또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불과 두 세대 전만 해도 프랑스인과 독일인은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시작된 적대관계가 아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오늘날의 독일을 짓밟기를 되풀이했다. 프로이센이 보복했다. 1871년 프랑스 제2제국에 처절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프랑스에 프로이센군을 주둔시키고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독일의 복수는 프랑스의 복수를 불러왔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패퇴시킨 프랑스는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50여년 전 이 방에서 프로이센에 빼앗겼던 알자스로렌을 되찾았고 막대한 전쟁배상을 요구했다. 1923년에는 독일 루르 지방을 점령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프랑스가 철저하게 복수를 한 것이다. 프랑스의 복수로 독일은 처참한 경제적 고충을 겪었다. 프랑스 등에 대해 치솟은 적개심이 나치의 집권으로 이어지고 결국 또 한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피의 보복이 무한정 되풀이되지는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는 150여년 사이 네차례의 전쟁으로 사상자 3200만명을 낸 불구대천의 원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화해했다. 이제는 사이좋은 이웃이 되었다. 양국 간 정상회담과 주요 장관회담이 정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군대를 합쳐 독불여단을 창설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상대방 언어를 익히고 공통 역사교과서로 역사를 배운다. 이들의 평화는 유럽 통합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전쟁의 악순환은 끊을 수 있다. 불구대천의 원수도 친한 이웃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반도를 들썩이는 변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남과 북은 더 이상 ‘주적’이 아니다. 총과 대포를 내리고 평화롭게 번영하는 관계를 만들고 있다. 서로를 겨누는 군대와 무기체계, 군사연습 자체가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드는 노정이다. 마음 안에 있는 적대감, 불안감을 씻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미국과 북한도 이 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과정을 냉전시기 미·소 군비통제로 보는 것은 본질을 놓친 것이다. 그래서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 국장은 틀렸다. “북한의 지도자들이 궁극적으로 핵무기가 정권 생존에 결정적이라고 보기 때문”에 완전히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인식은 북-미 정상 합의의 핵심을 놓친 것이다. 핵무기가 필요 없는 ‘새로운 북-미 관계’를 만들자는 핵심을. 북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특별 ‘경제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워싱턴 타임스>의 보도도 핵심을 놓치기는 마찬가지다. 비핵화를 위해 대북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 핵심을 아예 부정하는 것이다.
되레 아베 일본 총리가 현 한반도 정세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짚었다.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고…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 그것이 가야 할 길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1963년 엘리제궁에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한반도에도 그러한 ‘엘리제’가 올 것인가.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19년 1월 30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0571.html#csidx897dd3aaef1f513a5df8814c45ab2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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