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 오키나와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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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24 09:21 조회21,9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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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오키나와(沖繩)가 봉기 중이다. 11월8일, 기노완 시 해변공원 야외극장에서 열린,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집회에 오키나와 주민 2만1000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섬 중부 기노완 시 중심에 위치한 미국 해병대 항공기지 후텐마 비행장을 섬 북부 나고 시 헤노코 해변으로 이전하는 문제에 대한 반대의사가 오바마 대통령의 첫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11·8 집회는 지난 8·30 총선의 연장이기도 하다. 선거구 2명과 비례구 1명의 중의원을 뽑는 오키나와 선거에서 새 기지 건설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민주당 후보들이 자민당 현역 의원 3명을 누르고 모두 당선된 결과까지 감안하면, 이 섬에 부는 반(反)기지 바람의 강도를 짐작할 만하다.
태풍의 길목에 자리한 오키나와를 찾은 것은 재작년 2월이었다. 이 아름다운 산호초 섬에서 처음 맛본 혼란은 오키나와라는 지명의 중첩이다. 오키나와는 우선 현(縣)의 이름이다. 1879년 메이지 정부는 류큐(琉球)왕국을 일본의 최남단 현으로 편입하는 이른바 류큐 처분을 강행했다. 이때 일본 정부는 류큐 대신에 오키나와를 선택했다. 이 이름은 사키시마 제도와 함께 이 현을 구성하는 오키나와 제도에도 붙어 있다. 오키나와 제도의 중심 섬이 바로 오키나와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오키나와 본섬(本島)이라고 부른다. 아, 하나 더 있다. 이 본섬에 오키나와 시가 있다. 그런데 오키나와 시를 이 섬의 중심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알다시피 오키나와의 현청 소재지는 본섬 남부에 있는 나하 시다. 메이지 정부는 도대체 왜 오키나와를 곳곳에 붙인 걸까? 이제 류큐는 일본의 ‘식민지’ 오키나와라는 점을 안팎에 각인하려는 일종의 세뇌에 가까운 시도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니 오키나와의 시민운동이 중개무역으로 번성한 독립왕국의 옛 이름 류큐를 회복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이름을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이 섬을 압박하는 자물통이 보였다. 조선이 일본 대륙 침략의 북쪽 관문이라면 류큐는 그 남쪽 관문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류큐를 접수한 일본은 청일전쟁 뒤 바로 타이완을 식민지로 거두는 한편, 조선에 대한 장악력을 높임으로써 대륙으로 가는 남북 통로를 정비했다. 북쪽 길이 더욱 깊숙이 대륙을 파고들자 류큐는 태평양전쟁으로 가는 일본 남진정책의 기지 노릇에 충실했다. 미국은 일본이 남진한 길을 거슬러 오르면서 일본을 마침내 항복시켰다. 그 항복 직전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는 그야말로 불의 지옥을 방불케 했다. 이 전투 직후 항복한 일왕은 ‘천황제’ 보존을 위해 직접 오키나와를 미국의 식민지로 공여했다. 미국은 오키나와를 ‘극동’ 최대의 미국 공군기지 가데나 비행장을 비롯한 요새로 무장된 무서운 섬으로 만들어버렸다. 1972년 일본에 반환된 이후에도 미군기지는 의구했으니, 공포와 광기의 집단자살이라는 참혹한 형태로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에서 평화는 절실한 비원(悲願)이 아닐 수 없다.
남북의 자제력과 일본의 신중함 인상적
지금도 기지 이전 반대투쟁의 현장 헤노코 해변을 방문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해변 한쪽 조금 들어간 곳에 그들의 본부라고 할 집이 한 채 있었다. 그것은 시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냥 살았다. 당시 나는 그것이 진정한 시위라는 점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솔직히 그분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회의를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이 어쭙잖은 우려는 그 뒤 기분좋게 깨졌다. 오키나와에 다녀온 그해 9월 말, 오키나와 전투를 왜곡한 우익 교과서를 규탄하는 집회에 놀랍게도 11만명이 모였다는 소식에 나는 감격했다.
오키나와는 살아 있다. 오키나와와 한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연동된다. 11·8 오키나와 집회 이틀 뒤 한반도에서는 돌연 서해교전이 터졌다. 이 사건에 대한 남북의 자제력은 인상적이다. 남북이 자제하니 일본도 신중하다. 이를 꼬투리로 실상은 ‘한국 때리기’인 ‘북조선 때리기’가 불시에 일어나, 바로 재일동포에 대한 ‘이지메’가 일본 곳곳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이 11월12일 한국 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일·북 관계개선 문제’에 적극적 의지를 표명했다.(한겨레 11월13일자)
오바마의 첫 순방을 앞둔 시점에 모처럼 동아시아 각 나라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좋은 징조다. 모쪼록 동아시아와 미국이 함께 진화할 첫 단추가 잘 끼워지길!
최원식 (인하대 교수·한국어문학과)
(시사IN,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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