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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 대학이 꿈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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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9-04 09:38 조회8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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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에 태국의 도시 매솟을 방문했다. 군부의 압제를 피해 넘어온 미얀마 난민이 주민의 2/3를 차지하는 국경 도시다. 한국에서 모은 돈과 물품을 전하고, 난민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도 몇 곳 방문했다. 벽 없는 목조 건물에 맨발이어도 아이들의 얼굴은 환했다.


어느 고교 과정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학생이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우리 일행의 대표가 물었다. “한국에 가고 싶어요?” 학생이 대답했다. “예, 한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일하고 싶지는 않고요.”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능력주의 경쟁에 몰입된 대학체제를 비판하며 대학을 떠난 입장이라 대학이라면 좀 냉소적이었다. 대학과 공부가 더 나은 삶을 위한 꿈과 연결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둘러싼 논쟁은 주로 대학의 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선택과 집중’ 논리와 서울공화국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지방대 차별론’ 사이를 오간다. 모두 중요한 주제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 탓일까?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진학 후에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고통에 주목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현직 교사인 강지니의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2023)에 주류 담론에서 배제된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병이 있는 어머니와 새아버지 아래서 자란 소희는 문제아로 방황하다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소희에게 대학은 캄캄한 삶을 벗어나게 해 줄 유일한 희망의 동아줄이었다. “저는 절실하게 대학에 가서 잘되고 싶었어요 …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랑 얘기를 했어요. ‘네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지장이 없다면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되는데,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으면 대학을 가라.’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뭔가 시작할 수 있겠구나.” 혼자 힘으로 다녀야 하는 대학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너무 서러워서 수업 시간에 운 적도 있다. 


아버지는 일에 실패하고 어머니는 종교에 빠져 집을 나간 가정에서 자란 영성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했다. 등록금과 용돈은 물론 가족의 생활비까지 벌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세 개까지 했다. 이틀 내내 잠 못 자며 일하기도 했다. 학점이 좋아야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슬퍼진다.


책은 대학이 이들의 삶에서 가진 의미에 주목하면서도 대학을 무조건 이상화하지 않는다. 수정처럼 대학을 마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된 경우에도 가족의 빈곤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교정시설을 드나들다 배달 일을 하는 현석의 삶이 실패라고 단정짓지도 않는다. 대신 이들이 삶의 의욕을 얻고 역량을 키워간 구체적 계기들에 주목한다. 적극적인 사회복지사와 기관들, 선한 의지를 가진 교사와 교수들이 등장한다.


문제는 한국의 선별 복지체계에서 청소년이 좋은 어른이나 기관을 만나는 건 ‘우연’의 소산이라는 데 있다. 대학에서는 그 우연조차 만나기 어렵다. 괴로운 가족관계, 힘겨운 학교생활과 교우관계 등으로 고통받던 이들은 대학의 상담시설을 찾아가지만, 개인적인 심리상담 이상은 제공받지 못한다. 대학 서열화는 인기 있는 비판 주제지만, 같은 대학 안에서도 경제적 격차에 따라 삶의 기회가 매우 불평등하다는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않는다.


아예 대학에 갈 수 없는 이들도 있다. 미등록이주민의 자녀들이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자란 이들은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자연스럽다. 부모의 체류자격 미비에 따라 이들까지 ‘불법’이 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다. 성인이 되면 체류자격을 잃으니 대학 입학은 원천 불가다. 강제퇴거만 당하지 않아도 다행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몽골 출신 마리나는 장애인 부모를 도우며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웠다. 고3 때 꿈을 포기했다. 어려서 한국에 온 우즈베키스탄 출신 카림과 달리아 남매는 공부를 잘했다. 카림은 역사 골든벨 대회에 나갈 정도로 한국사 덕후고, 달리아는 백석을 좋아하는 시인 지망생이다. 부모가 반독재운동을 한 터라 돌아갈 나라도 없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후 꿈을 잃었다. 은유 작가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2021)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상위권 대학에 초점을 맞춘 선택과 집중 논리든, 지방대에 초점을 맞춘 공정한 경쟁론이든 한국의 대학 담론은 모두 경쟁 논리 위에서 작동한다. 누구에게 영광의 트로피를 주는 게 합당한지 따지는 데 열심이다. 정작 대학을 간절한 꿈으로 여기는 이들은 이 논쟁에 없다. 대학 담론의 한 축을 이들에게 돌려서 대학의 공공성을 높이는 데 힘을 쏟으면 어떨까? 대학이 홀로 해결할 일은 아니지만, 대학 말고 또 누가 앞장설 수 있을까?


조형근 사회학자

교수신문 2024년 8월 27일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2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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