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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인권의 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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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11-06 16:23 조회2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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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단체들 분투 끝에 2001년 출범


법원 재판 아닌 만큼 위법 따지는 법률가보다 진보적 인권 활동가가 위원으로 더 어울려


보수적 사법 판단 넘어 숨은 인권 가치 캐낼 때 조직 존재 의의 있어


‘학생 휴대전화 수거는 인권 침해 아니다’ 10년 만에 뒤집은 결론 100년 쯤 퇴보로 비쳐


신이 인간을 만들었는지 인간이 신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인권이 태어나면서 가지는 자연계에 새겨진 권리인지 사회적 구성물인지 모호하나, 인간 사회에서 인권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핸드폰은 인간이 필요해서 만들었지만, 학생이 학교에서 핸드폰을 사용할 권리는 어떠할까?


국가인권위원회는 2001년에 출범했다. 자연권이 됐든 실정권이 됐든, 인권의 진보적 실현을 목적으로 문을 열었다. 누구나 원하는 바였기에 만든 것이 아니다. 인권단체들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였다. 인권에 관해서는 정부보다 민간단체가 나설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인권 침해의 주체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1945년 유엔 헌장에 NGO를 협력 상대로 명문화하고, 그 이전 국제연맹 시절 NGO를 회의에 초대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1993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한국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는 본격적으로 정부에 인권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1997년 대통령 후보 김대중은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고, 당선된 이듬해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시켰다. 민간단체는 공동위원회를 결성하여 실행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진척이 더뎠던 까닭은, 인권기구를 설치하되 법무부 산하기관으로 관리하겠다는 정부의 태도 때문이었다. 민변과 참여연대 등 71개 단체가 정부와 3년에 걸친 싸움을 계속했다. 법무부는 특수법인 형태의 인권위원회 법안을 상정했으나 폐기됐다. 공대위는 헌법기관에 준하는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된 기구를 강력히 요구했다. 유엔 총회가 채택한 파리원칙에 근거한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법률이 제정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탄생했다.


23년째를 맞은 국가인권위원회는 보수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흔들린다. 대통령과 여당이 취향에 맞는 사람을 위원장과 상임위원으로 임명하는 탓이다. 인권위원회의 결정 방향을 집권 정당의 노선에 맞추려 해서는 곤란하다.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되, 운영은 완전히 독립시켜야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진정한 민주 정부라면 불편한 감시자를 인권위원 자리에 앉혀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진보적일 때 의미가 유지된다. 기존의 관념과 가치를 조심스럽게 지키려면 법무부 인권국으로도 충분하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가려진 인권을 찾아내는 역할이 필요하다. 인권위원회 기능이 법원의 재판과 다르다는 점도 중요하다. “위법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대는 인권위원이 의외로 많다. 위법하지 않으면 인권 침해 행위가 될 수 없다는 기본 전제가 법률가들의 직업병적 한계다. 위원회는 실정법을 넘어, 보수적인 사법 판단의 범위 바깥에서 인권적 가치를 캐낼 때 존재 의의를 가진다. 기존의 제도권에서 타성에 젖어 감행하지 못하는 수준의 인권을 실현하고, 그것이 행정소송의 대상이 돼서 취소되더라도 끊임없이 진보적으로 영역을 개척해 나아가는 것이 인권위원회의 임무다. 머뭇거리는 보수의 손을 이끌어 그들 인식의 지평까지 넓혀 주는 것이 의무다. 따라서 인권위원으로는 법률가보다 인권 활동가가 더 어울린다.


국가에 인권기구가 필요하다는 발상의 역사적 연원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킬 것”을 목적으로 규정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를 보면 사태를 이해할 수 있다. 발견한 권리든 만든 권리든 고교생의 핸드폰 사용 권리에 대해 인권위원회는 10년 전의 결정을 뒤집었다. 수세적으로 회귀하는 인권위원회의 모습이 미래를 바라보는 인권적 감성의 렌즈에는 100년쯤 퇴보하는 것으로 비친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4년 10월 23일 

https://www.lawtimes.co.kr/opinion/2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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