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언]이웃 어른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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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3-06 17:52 조회3,3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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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지음 l 문학과지성사(2022)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그림책 <알사탕>(백희나, 2017)에는 혼자 놀다가 새 구슬을 사러 문방구에 들른 ‘동동’에게 구슬 대신 색색의 알사탕을 소개해주는 문방구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알사탕을 입속에 넣을 때마다 동동은 놀라운 일들을 겪는데, 이 덕분에 동동의 내면은 점점 씩씩해진다. 동동이 어떤 일을 겪는지, 알사탕 몇 알이 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여물게 하는지 독자 여러분들이 그림책을 읽고 직접 확인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놓아두는 한편, 오늘 이 지면에선 동동에게 알사탕을 알려준 ‘문방구 할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리기로 한다. 할아버지는 평소 동동이 혼자 노는 외로운 어린이였다는 걸 알고 계셨을 거다. 구슬을 사러 문방구에 드나드는 어린이들의 동작과 말투, 그 또래 무리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오래 지켜보던 어른만이 건넬 수 있는 말과 표정으로 동동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림책 속 할아버지와 같이 어린 시절 학교 근처의 슈퍼마켓 아주머니, 분식집 이모, 도서관 사서 선생님 등 인사를 나누던 이웃 어른들의 존재가 마을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안다.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의 몫을 해내면서 주위 어린이를 자신의 이웃으로 존중할 줄 아는 이웃 어른의 태도는 어린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마음껏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황인숙 시인의 시집(<내 삶의 예쁜 종아리>) 곳곳에 스며 있는 동네 풍경을 마주하다가, 지금 우리 사회가 잃어버리고 있는 말 중 하나가 어쩌면 ‘이웃 어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음 시에는 언뜻 무심해 보이지만 서로의 속사정을 투명하게 이해하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30롤 화장지 세트 쌓여 있던/ 가게 앞 매대가 텅 비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껍질 땅콩도 일주일 지나도록 안 들여놓고/ 선반 여기저기/ 어딘가 점점 단출해지더니/ 가게를 내놨단다/ 마음 한구석이 휑해지는데/ 그대는 더하겠지/ 기억하나 모르겠지만/ 내가 그대를 처음 봤을 때/ 갓 제대를 했었던가,/ 그대는 풋풋하게 어린 모습이었다// 스물다섯 해 남짓 드나들던 가게/ 총각 형제 둘이 24시간 열던 가게/ 근처에 농수산물 할인점이 들어서고/ 편의점이 들어서고/ 언젠가부터 자정 무렵에 문을 닫았지/ 그대 형이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는 동안/ 그대 삶은 그대로인데/ 모습도 그리 변하지 않았다// 아, 왜 이렇게 섭섭하지?/ 부디 새 터전 일굴 힘을 모았기를!/ 나는 괜히/ 고구마 한 봉지랑 두부를 집어 들고/ 또 뭐 없나, 둘러보았다“(‘또 사라져가네’ 전문)
오래 드나들던 가게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시인은 섭섭하다. 그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들이 어떤 얼굴로 젊은 시절을 보냈는지 그들의 이웃으로서 훤히 알기 때문이다. 시의 제목이 ‘또 사라져가네’인 걸로 보아, 이렇게 사라져 가는 이웃이 한둘이 아닌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개발 때문에, 지역 발전이라는 명분 때문에 여러 이유로 사라져 가는 마을 풍경이 너무 많고, 서로를 묵묵히 지켜주는 이웃의 존재 역시 점점 사라져 가는 요즘이다.
마을의 중요한 이웃인 ‘작은도서관’을 ‘사라지게’ 하는 정책을 펼치는 어른들이 있는 사회에서, 서로 돌보기를 꺼리기만 하는 사회에서 어린이는 과연 무엇을 믿고 자랄까. 지금 어른들은 과연 ‘이웃 어른’의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겨레 2023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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