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재판과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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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5-30 16:49 조회3,0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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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예측이 아니다. 불확정 상태의 미래 상황을 미리 짐작하여 판단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재판의 목적이나 과정은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너무나 분명한 것 같지만, 일의적으로 확실하게 언명하기는 쉽지 않다. 명확히 확정할 수 있다면, 사법제도 운영이나 개선을 위한 기획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약간 흉내 내어 가설을 세워 보기로 하자. ‘재판의 목적이나 최종 지향점은 일종의 정답을 맞히는 데 있다’를 가설로 하자. 맞힌다는 것은 숨은 정답을 찾아낸다는 말과 같다. 정답은 옳고 그름이다. 분쟁 상태에 있는 둘 이상의 당사자 사이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밝히는 작용이다. 형사 사건의 경우 발견하고자 하는 실체적 진실이 정답이 될 텐데, 크게 보면 차이가 없다.
목표가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구체적 사안을 특정하는 소장이나 공소장은 문제가 된다. 문제는 정답이 존재함을 전제한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문제는 정답이 일가적이지 않다. 정답이 두 개 이상일 수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출제 오류라는 사태도 발생하고, 너무 어려워 정답에 이르지 못하는 난제도 등장한다.
문제가 제시되면, 풀어야 하는 의무자는 누구인가? 법관이 의무의 담당자라는 사실에는 의문이 없다. 원고와 피고, 검사와 피고인이라는 이름의 대립당사자는 공동출제자인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관련자인가? 양쪽의 성격을 모두 가지는가?
법관과 당사자 그리고 관련자들이 모여 토론회를 벌이듯 주장과 논박을 거치는 방식으로 소통을 거쳐 합리적이고 원만한 마당적 이해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재판이라는 대화이론도 있다. 그런 면에서 당사자는 각자가 출제자인 것처럼 보인다. 출제자는 대개 정답을 알고 있다. 당사자의 정답이란 자기 주장이다. 당사자가 출제자라면, 법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기 주장을 받아달라는 요구다. 그에 대립당사자는 상대방의 주장을 무산시키기 위한 반대 방향의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는 셈이다. 실제 법정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당사자는 순수한 출제자가 아니라 자기의 이익 실현을 위한 전략적 참여자다.
출제 의도를 따져봐도 소송당사자가 순수한 출제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금방 드러난다. 당사자는 출제자가 아니라 문제에 부딪힌 해결의 의무자다. 문제를 부과한 주체는 그의 생활 주변의 복잡한 양상이다. 사회 구조에서 이루어지는 삶이 부과한 문제를 숙제로 받았으나 혼자 풀지 못하고 법원이라는 기관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당사자다. 출제자인 줄 알았던 당사자가 실상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곤경에 처한 수험자 또는 의무자라는 것이다.당사자가 소장이나 공소장에서 출제자인 양 당당하게 주장을 펴는 것은 이기기 위한 위장적 전략의 하나다.
당사자가 제기한 소송이라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복잡한 사실관계의 확정과 법률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가능한 관련된 모든 것을 망라하면 문제 해결에 유리하거나 유익하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다. 그것을 전개하는 과정 또는 대화의 마당이 소송절차다. 전반적 수행의 편의를 위해 일반화한 내용이 이론이며 교과서다. “조류학 교과서가 조류의 세계를 바꾸는 일은 없지만, 형법 교과서는 형법을 변경할 수 있다.” 울프리트 노이만의 말인데, 법은 그 자체가 정당한 것이 아니라 제시되는 근거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의미다. 법실증주의적, 만약 수긍한다면 정답이 있는 것으로 전제한 재판의 가설은 무너진다.
정답이 없다면 재판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게임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일까? 게임의 요소가 내재하고 있다면, 예측도 가능하다는 말인가?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약간 흉내 내어 가설을 세워 보기로 하자. ‘재판의 목적이나 최종 지향점은 일종의 정답을 맞히는 데 있다’를 가설로 하자. 맞힌다는 것은 숨은 정답을 찾아낸다는 말과 같다. 정답은 옳고 그름이다. 분쟁 상태에 있는 둘 이상의 당사자 사이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밝히는 작용이다. 형사 사건의 경우 발견하고자 하는 실체적 진실이 정답이 될 텐데, 크게 보면 차이가 없다.
목표가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구체적 사안을 특정하는 소장이나 공소장은 문제가 된다. 문제는 정답이 존재함을 전제한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문제는 정답이 일가적이지 않다. 정답이 두 개 이상일 수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출제 오류라는 사태도 발생하고, 너무 어려워 정답에 이르지 못하는 난제도 등장한다.
문제가 제시되면, 풀어야 하는 의무자는 누구인가? 법관이 의무의 담당자라는 사실에는 의문이 없다. 원고와 피고, 검사와 피고인이라는 이름의 대립당사자는 공동출제자인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관련자인가? 양쪽의 성격을 모두 가지는가?
법관과 당사자 그리고 관련자들이 모여 토론회를 벌이듯 주장과 논박을 거치는 방식으로 소통을 거쳐 합리적이고 원만한 마당적 이해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재판이라는 대화이론도 있다. 그런 면에서 당사자는 각자가 출제자인 것처럼 보인다. 출제자는 대개 정답을 알고 있다. 당사자의 정답이란 자기 주장이다. 당사자가 출제자라면, 법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기 주장을 받아달라는 요구다. 그에 대립당사자는 상대방의 주장을 무산시키기 위한 반대 방향의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는 셈이다. 실제 법정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당사자는 순수한 출제자가 아니라 자기의 이익 실현을 위한 전략적 참여자다.
출제 의도를 따져봐도 소송당사자가 순수한 출제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금방 드러난다. 당사자는 출제자가 아니라 문제에 부딪힌 해결의 의무자다. 문제를 부과한 주체는 그의 생활 주변의 복잡한 양상이다. 사회 구조에서 이루어지는 삶이 부과한 문제를 숙제로 받았으나 혼자 풀지 못하고 법원이라는 기관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당사자다. 출제자인 줄 알았던 당사자가 실상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곤경에 처한 수험자 또는 의무자라는 것이다.당사자가 소장이나 공소장에서 출제자인 양 당당하게 주장을 펴는 것은 이기기 위한 위장적 전략의 하나다.
당사자가 제기한 소송이라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복잡한 사실관계의 확정과 법률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가능한 관련된 모든 것을 망라하면 문제 해결에 유리하거나 유익하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다. 그것을 전개하는 과정 또는 대화의 마당이 소송절차다. 전반적 수행의 편의를 위해 일반화한 내용이 이론이며 교과서다. “조류학 교과서가 조류의 세계를 바꾸는 일은 없지만, 형법 교과서는 형법을 변경할 수 있다.” 울프리트 노이만의 말인데, 법은 그 자체가 정당한 것이 아니라 제시되는 근거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의미다. 법실증주의적, 만약 수긍한다면 정답이 있는 것으로 전제한 재판의 가설은 무너진다.
정답이 없다면 재판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게임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일까? 게임의 요소가 내재하고 있다면, 예측도 가능하다는 말인가?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법률신문 2023년 5월 18일
https://www.lawtimes.co.kr/Legal-Opinion/Legal-Opinion-View?serial=187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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