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 [명저 새로 읽기]“예수는 메시아” 신념을 역사적으로 고증하는 데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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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6-12 14:43 조회23,7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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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마르틴 헹엘 <유대교와 헬레니즘>
고백하건대 이 책을 논평할 자신도 없고 자격은 더더구나 없다. 교회의 문턱도 넘어본 적이 없고 평소 한국 개신교 교회의 어처구니없는 테러를 보고 있노라면 울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기독교와 멀리 지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심한 손길로 산더미 같은 자료를 정리하면서 기원전 2세기에 스스로를 내던져 역사적 상상력을 주조했을 저자와 이 방대한 저작 앞에서 몇 번이나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뚝심 있게 번역을 마쳤을 옮긴이를 생각하면 말을 보태는 일이 부질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대교와 헬레니즘>(박정수 옮김·나남)을 반드시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까닭은 아마도 이 대작이자 걸작을 전문가 아니면 별로 주목할 것 같지 않아서이다. 물론 신약 연구자들이야 이미 이 책을 어떤 방식으로든 접했을 것이고 이 책의 출간이 한국 신약 연구사에서 큰 사건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반드시 신약 연구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말이다.
박사과정 때의 일이다. 독일어 원전 강독 수업에서 가뜩이나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생이었는데 난데없이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섞인 복사물 하나를 받았다. 당연히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아이들 낙서보다 뜻을 알아내기 어려웠던 터라 책상 구석에 내던지고 다음주 수업에 “배째라”는 심정으로 들어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텍스트는 이 책의 3권 1장과 2장 부분이었고 선생님이 친히 설명하면서 강독해주었다. 물론 그 전부터 서양고전학과 성서해석학 사이의 긴장에 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지만 헹엘의 세심하고 고집스러운 서술에는 고개가 숙여지면서 연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경외감마저 생겼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신념과 가치가 있다. 연구자는 그런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논증해야 한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사실 매우 힘들다. 이론으로 가면 공허해지기 마련이고 역사로 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헹엘의 경우에는 꽉 찬 내용으로 탁 트인 한 길을 간다. “예수는 메시아”라는 단순명쾌하고도 단호한 신념을 어디까지나 역사적 고증으로 증명해 나가는 것이다. 그 수업의 선생님도 신약 연구사 같은 전문분야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헹엘이라는 명장의 손길을 본보기 삼으라는 의미에서 이 텍스트를 읽을거리로 삼았다고 하시면서 자신도 사실 잘 모르는 분야라고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책의 주장은 매우 단순한 것으로, 기독교란 헬레니즘 유대교의 개혁을 지향한 흐름 속에서 나타난 신앙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헹엘 이전까지의 신약 연구는 원시 기독교를 팔레스타인 공동체와 헬레니즘 공동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파악하고 초기 기독교를 후자의 영향을 받은 혼합체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헹엘은 이런 지배적 경향을 정면에서 반박하면서 기독교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모태인 유대교가 이미 헬레니즘화되었던 것이라 논증한다. 이는 불트만이 역사의 예수를 회의한 것에 반대하여 예수가 자신이 메시아라는 확고한 의식하에서 여러 주장들을 펼쳤음을 논증하는 사실의 토대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신약 연구의 전문분야까지 건드리며 이 책을 논평할 자신은 없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이 연구사와 연구자 집단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능력을 넘어선 일이기에 아쉽지만 괄호를 쳐두기로 한다. 그러나 좁게는 인문 사회과학 연구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내세울 필요가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헹엘의 손길은 최고의 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논증 없이 주장과 억지만 판치는 이 땅의 ‘공론장’에 헹엘의 자세와 태도가 조금이라도 알려졌으면 한다. 특히 신앙이 아니라 증오를 설파하는 이 땅의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헹엘의 믿음을 실천하는 태도를 주말마다 설교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 다시 한 번 옮긴이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김항,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경향신문, 201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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