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혁] 한·미 FTA 이후의 전략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8-03 17:26 조회24,146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우리나라는 수출지향 공업화와 인적자원개발을 통해 성장한 국가로서, 개발연대 이후 산업구조 고도화와 사회통합을 저해하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개방을 추진해 왔다. 이미 발효되긴 했지만, 한·미 FTA는 이와 같은 정책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 한·미 FTA의 부작용이 공공정책을 파괴할 정도로 심각할 경우 미국에 통보 후 협정 폐기가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고 긍정적인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한·미 FTA 이후의 지역협력과 통상 전략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도하라운드를 중심으로 한 다자간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아시아 국가들도 차별적 무역협정에 관심을 보이면서 1)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무역·투자 자유화를 추진하는 움직임과 2)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병렬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자유화는 미국 주도의 움직임으로,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협력은 중국 주도의 움직임으로 평가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자유화는 원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를 중심으로 추진되었으나 2000년대 들어 표류하다가 최근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TPP는 2000년대 초반 칠레, 싱가포르, 뉴질랜드 주도로 출범했고,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이 참여하면서 현재 협상 참여국이 12개국으로 확대됐다.
TPP에 대한 미국의 기본구상은 협상하기 비교적 쉬운 중소국가들과 함께 자유무역협정의 ‘금본위제(gold standard)’에 해당되는 폭넓고 수준 높은 규범을 설정한 후 중견 우방국은 물론 중국이 향후 TPP에 가입할 때 기존 규범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은 미국이 제시한 폭넓고 수준 높은 규범을 수용하는 데 난색을 표명하고 있고, 중국도 기존 협의체에 ‘2등 시민’으로 합류하기보다는 선진국과 동등한 회원국으로서 다자간 협의체의 규범을 설정하려고 하므로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공동체의 모색은 ASEAN + 3 주도로 발전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로 인해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연대감이 강화되면서 통화스와프, 아시아 채권시장, 동아시아 FTA 등에 대한 논의의 진전이 있었고 2011년에는 역내 거시경제 감시기구(AMRO)가 출범했다. 한·중·일 경제협력에 대한 논의는 역사 문제 등에 영향을 받아 부침이 심하다가 최근에는 미국 주도의 TPP 움직임에 대한 대응 측면도 부각되고 있다. 2012년 미국 주도의 TPP가 타결될 가능성 등에 대비하여 중국이 한·중·일 FTA 및 한·중, 중·일 FTA를 적극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협력 및 통상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 구도를 부각시키는 시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국적기업을 중심으로 한 국제생산네트워크가 확장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지역과 미국·인도 등 역외 국가들을 엮는 형태의 협력체가 결성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하였으므로 TPP 협상에 대한 추가적인 부담이 적은 편이고, 동아시아 지역 경제공동체 결성 과정에서도 협력 조성자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지역협력의 양대 흐름에 적극 참여하여 궁극적으로 두 협력체를 연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시에 이와 같은 지역협력과 무역자유화 정책이 산업구조 고도화와 사회통합에 저해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임원혁 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
(경향신문, 2012. 8.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