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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대외정책과 대통령의 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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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8-17 17:09 조회26,6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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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깜짝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격랑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뜻을 밝히고, 양국 정상 왕복외교 중단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독도가 우리 땅임은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일본이 방위백서 등에서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각종 역사적 전거가 우리 땅임을 확인하고 있고 지금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것도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독도에 대해 턱없는 주장이나 펼치는 일본의 행태는 우리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이런 국민적 공분을 배경으로 했을 터이다.


하지만 국가 최고지도자의 행위는 필부의 그것과는 달리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의 깜짝쇼는 그런 점에서 부적절하다. 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지 분명치 않다. 그런데 일본한텐 독도를 분쟁지역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핑곗거리가 생겼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본 우익이 설칠 수 있는 장도 열어줬다. 우리가 아닌 일본을 돕는 행위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이니 외국 언론들마저 측근비리와 집권당의 공천헌금 비리 혐의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국내정치적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외교적 측면에서 보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현 정권 대외정책의 파탄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이래 우리 안보에 관건적으로 중요한 북한·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한·미·일 가치동맹 추구에 매달렸다.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보류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는 등 한-일 군사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키려 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던 그가 독도 방문이란 초강수를 들고나온 것은 자신의 이런 노력에 아무런 호혜적 조처를 취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불만의 폭발로 볼 수 있다. 가치동맹이란 시대착오적인 대외정책이 실효적 이득을 가져오긴커녕 한반도 주변의 불안정만 강화시켰음을 자인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 5년은 경제나 복지 등 국내문제에 대한 식견 못지않게 올바른 대외정책 능력도 대통령의 주요한 자질임을 깨우쳐주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말마따나 “안보가 불안하고 평화가 정착하지 못한다면 복지국가도 정의도 불가능”한 까닭이다. 특히 다음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대외적 불안정 요인이 큰 시기이다. 북한에선 경험이 부족한 20대의 청년 지도자가 체제의 동요를 막으면서 경제난국을 돌파해야 할 과제를 짊어지고 있고, 중국 역시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여파 속에서 지도자 교체기를 맞고 있다. 일본에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존 정당들에 대한 실망으로 우익 포퓰리즘이 성장하는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각축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차기 대통령은 이런 대외정세의 불안정성에 슬기롭게 대처해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통일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는 인사여야 한다.

우리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변인은 남북 분단이다. 60년 이상 지속된 분단체제를 극복·해소할 방안에 대한 깊은 천착이 있어야만 올바른 대북정책도 올바른 대외정책도 나올 수 있다. 북한 붕괴론에 기댔던 현 정권의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포용정책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계에서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찍이 시민참여형 단계적 통일론인 ‘포용정책 2.0’을 제시했고 박명규 서울대 교수는 국가연합을 과도적 단계가 아닌 통일의 최종 단계로 상정할 수도 있다는 연성복합통일론을 내놓기도 했다.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여야 지도자들 역시 6·15선언에서 합의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국가연합으로 발전시키자는 구상에서부터 중립화통일론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런 의견들 가운데 대선이란 담금질 과정을 거쳐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는 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대북정책 논쟁을 소모적인 이념논쟁이 아닌 한반도 주민 전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경쟁의 장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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