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한·중 FTA의 ‘네트워크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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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5-09 13:17 조회23,1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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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일 한국과 중국 정부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5월10일에는 첫 번째 협상이 베이징에서 열리게 되었다. 한·중 FTA 추진을 위한 민간연구가 개시된 것이 2005년이므로, 협상 개시에 만 7년이 걸린 셈이다.
중국 측은 2014년 상반기까지 타결을 보겠다는 방침을 내걸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한·미 FTA가 발효된 상황에서 한·중 FTA 협상 개시를 요구하는 중국의 독촉을 마냥 회피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한·중 FTA 협상 및 체결을 절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지금 정부가 공언하고 있는 대로 첫 단계 협상에서 양국이 민감품목군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음 단계 협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킬 필요가 있다. ‘무역의 이익’보다는 ‘네트워크의 이익’을 협상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우선 짚어볼 것은, 한·중 FTA는 ‘무역의 이익’을 실현하기 어려운 협상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무역의 이익은 교환에 의한 이익과 생산특화에 의한 이익으로 구성된다. 무역거래에 의한 교환의 이익이 크더라도 생산특화 때문에 특정 부문에 피해가 집중될 수 있다. 무역에 의해 일국 전체의 후생이 증가하더라도 모든 소비자의 후생이 증가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한·중 FTA는 대기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분야에는 이익이 발생하지만 농민·중소기업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입장에서 한·중 FTA의 ‘무역의 이익’은 비교열위에 있는 농업과 제조업을 축소하고 비교우위에 있는 서비스 부문이나 투자부문에 집중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무역의 이익’은 피해 부문에 대한 보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 의한 보상프로그램이 과소하거나 과대하게 책정되거나 집행 과정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서비스·투자·지재권 같은 비상품 분야에서의 이익은 정교한 재산권제도와 규칙 위반에 대한 징벌시스템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은 이와 괴리가 있고, 비상품 부문에서 이익을 얻기가 쉽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재산권이 성립하는 데에는 편익과 함께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도 모든 자원에 재산권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특히 제도 형성에 드는 교섭비용과 감시비용이 매우 큰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법 제도는 어느 단일한 법계를 계수한 것이 아니고 여러 요소가 혼합된 것이다. 중국의 법은 국내적으로 “인민이 주인이 되어 국가를 다스리고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무기”로 정의되어 있기도 하다. 중국의 재산권 제도와 국제법 질서 사이의 조정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국가 간 협상을 통해 무역구조를 바꾸고 그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낡고 조작적인 발상이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 무역과 투자 확대는 이미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어 국가 간 협상을 통해 개입할 시급한 문제는 아니다. 한국은 상품무역에서 흑자를 보고 있으므로 흑자폭을 더 늘리는 쪽으로 협상 방향을 잡는 것은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 및 동아시아,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을 생각하면, 중국과의 협력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현재 한·중관계에서는 무역·투자와 같은 시장 질서를 급진적으로 변경시킬 필요는 많지 않다. 오히려 정부 단위에서 협조와 조정이 필요한 것은 시장 실패가 나타날 수 있는 분야들이다. 또한 동아시아 역내에서는 패권적 국가주의를 제어할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외교부서가 독점하는 국가 간 관계에 다양한 정부·준정부·비정부 행위자들이 참여를 확대해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이 좋다.
FTA라는 것에 원래 꼭 따라야 할 정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조건에서 필요한 한·중 FTA는 양국은 물론 동아시아 지역내 협력을 증대하는 네트워크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과정으로서의 FTA’이다. 네트워크는 국가 간 공동체 형성이 어려운 동아시아 지역에서 협력을 현실화할 수 있는 개방적 조정방식이다.
‘네트워크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중 FTA의 의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역외가공지역으로 개성뿐만 아니라 해주·신의주도 포함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네트워크의 참여자를 다른 나라에도 개방하는 것이 좋다. 한·중 FTA를 금융 및 자원 위기에 대비하는 네트워크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한·중 양국이 통화스와프를 늘리고 단기자본의 유출입 속도를 조절하는 협의를 진행해보는 것 자체로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투기적 금융화에 의한 가격 변동이 심한 에너지와 식량 시장에서도 한국과 중국이 협력하면 시장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무역의 이익’을 추구하는 중상주의적 성장 모델은 중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한·중 FTA는 ‘네트워크의 이익’을 통해 협력적 개방을 이루어내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경향신문. 2012.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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