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영] 슬픈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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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6-13 16:32 조회22,61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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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유전자
인터넷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우월한 유전자’이다. 흔히 뛰어난 외모를 지닌 아이돌 스타의 얼굴과 몸매에 대한 찬사로 동원된다. ‘공부 잘하고 잘생긴 젊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은어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도 그만큼 자주 눈에 띈다. 여기엔 그 단어를 애용하는 어른들의 상투적 화술에 대한 가벼운 풍자와 빈부 격차와 관련된 은밀한 사회의식도 담겨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우월한 유전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내 기억에 이 단어는 1990년대까지 공공연하게 사용된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그때까지는 개인적 노력과 사회 정의가 유전적 격차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다수가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이 단어를 주로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즐겨 사용할 때, 그 표면의 감정은 감탄이지만 이면의 감정은 좌절이다. 그들과 나의 격차는 어떻게 해도 좁혀질 수 없으며, 그러므로 나의 유전자는 슬프다.
우월한 유전자, ‘나의 서사’마저 박탈하다
연예산업이 이 유전적 우월에 좋은 짝뿐만 아니라 돈과 명예까지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방송사의 토크쇼는 이 사태를 좀 더 심각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우월한 유전자의 연예인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풍성한 개인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비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토크쇼에 나온 그들은 종종 가난하고 힘들었던 가족사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고, 지금은 그것이 잘 극복되었다고 말을 맺는다.
육체의 형상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실은 그것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인간적 능력 혹은 인품까지 동반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처럼 큰 고난을 겪지도 않았고, 또 그들처럼 가족을 사랑하지도 않으며, 따라서 나는 그들처럼 감동적이고 멋진 이야기가 없다. 그들이(실은 미디어가) 이렇게 나의 서사를 왜소화하거나 심지어 박탈할 때, 나의 유전자는 절망적이다.
유전자 결정론이 잘못된 지식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이 사태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오늘의 뇌과학은 정치 성향도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4월, 영국 런던 컬리지대 의대 연구팀은 좌파와 우파는 타고난 뇌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이 20`30대 성인 90명의 뇌 단층촬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자신을 ‘진보’라고 밝힌 사람들의 뇌 구조는 대뇌 피질 앞부분이 발달해 있었다. 이 부분은 사물을 이해하고 복잡한 추상적 관념들을 결합해 특정한 사상으로 만드는 능력을 관장하는 곳이다. 반면 스스로를 ‘보수’라고 밝힌 사람들의 뇌는 일반인들보다 훨씬 소뇌가 컸으며 소뇌 가운데서도 무서움과 공포, 걱정, 불안 따위를 관장하는 부분이 발달해 있었다는 것이다. 좌우의 문제가 신념이나 판단이 아니라 유전자의 문제라면 우리는 대화와 소통이 완전히 쓸모없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정의(不正義)의 위안과 유전자의 절망 사이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존 롤스의 정의론을 이렇게 요약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그것이 최하층에 있는 자들을 이롭게 할 때만, 불평등이 상속된 위계에서 비롯되지 않고 보상이 아니라 우연으로 간주된 자연적 불평등에 근거할 때만 용납된다.” 지젝은 이어 “하지만 롤스가 보지 못한 것은 이런 정의 사회야말로 무제한적 원한이 폭발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요컨대 나는 내 실패가 열등한 능력 때문이 아니라, 우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실패를 훨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이 진실이라면, 나는 나의 낮은 지위와 사회적 실패가 사회적 부정의(不正義) 때문이라고 변명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미디어가 쏟아내는 ‘우월한 유전자’의 십자 포화에 갇힌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어떤 곳일까. 아직 사회적 부정의가 남아 있어서 자신을 위로할 변명을 찾을 수 있는 곳일까. 아니면, 우월한 유전자의 최종적 승리를 예감하고 무제한적 원한의 폭발 외에는 길이 안 보이는 곳일까. 매끈한 허벅지를 들이밀며 그들의 축복받은 유전자를 과시하는 아이돌 스타의 모습과 그 모습에 경탄하는 가벼운 언어들 앞에서도 이런 우울한 질문을 피할 길이 없다.
허문영 영화평론가·영화의전당 영화처장
(매일신문, 부산일보, 2012.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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