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안철수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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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7-27 14:22 조회32,38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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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안철수의 생각>이 서점가에 등장하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힐링 캠프’에 나온 뒤 ‘안철수’가 다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했다. 그가 출연한 힐링 캠프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고 책도 연일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고 한다. 이어 안 원장이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과의 양자대결에서 다시 앞섰다는 여론조사도 나오기 시작했다.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운동권 학생 수준의 글’이라거나 ‘여러 주장을 짜깁기한 수준’이라는 등 부정적인 의견도 없지 않다. 반면 우리 시대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법을 내포한 글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많다. 특히 자살률과 출산율에서 우리 국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포착해내고 그 불안 해소를 우리 시대의 과제로 내세운 것, 그리고 그 과제 해결을 위해선 평화·정의·복지라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상당한 울림이 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고 힐링 캠프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을 평가하는 대목이었다. 기업에서 어떤 사람을 뽑느냐는 질문에 답한 이야기였는데, 뒤에 덧붙인 친구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다른 친구와 논쟁을 하다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지 못한 친구가 뒤에 읽은 책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목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는 말을 듣고, 그가 친구에게 앞으로 책을 읽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책은 자기 생각을 교정하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읽는 것인데, 책에서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는 것만 찾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주변에 성벽을 쌓아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드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열린 자세가 오늘의 안철수를 만들어낸 주요한 덕목이 아닐까 여겨졌다.
안철수 박근혜
그러자 생각은 박근혜 의원과 그와 연관된 5·16과 10월유신을 둘러싼 최근 논쟁으로 이어졌다. 박 의원은 최근 5·16 쿠데타에 대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고 안보도 위기인 가운데 아버지가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라며 “올바른 선택”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 뒤 이 발언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국민의 50% 이상이 자신과 같은 견해라는 여론조사도 있다며 “정치권이 현재 국민의 삶도 챙길 일이 많은데 역사논쟁이나 해야 하냐”고 되받아쳤다.
우선 지적할 점은 5·16과 10월유신에 대한 평가는 그의 말처럼 한가한 역사논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던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현재 우리 사회에 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빈곤과 혼란을 핑계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한 5·16을 올바른 선택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종신 대통령이 되고자 헌정질서를 중단시킨 유신에 대해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민주적 가치를 부정하거나 경시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박 의원이 인권유린에 눈감고 국가인권위원회를 권력의 시녀로 추락시킨 현병철 인권위원장 후보나,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자유를 훼손한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등을 사실상 비호하는 것은 이런 역사인식을 가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5·16과 유신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역사논쟁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의 문제다.
박 의원의 태도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상식에 반한 주장을 하면서도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점이다. 이런 태도는, 그가 자연인 신분이라면, 애써 봐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을 하겠다면서 아버지 박정희와 통치자 박정희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진실을 외면하려는 이런 외고집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불통 논란과 더불어, 어쩔 수 없는 구시대적 인물이란 그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이미지로, 그가 대선 승리를 하려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20~40대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장외에서 몸을 풀고 있는 안철수란 상대는 그 자체로 박근혜의 지도자 자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2.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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