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물고기는 물고기와 - 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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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5-11 14:16 조회22,8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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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 시장 횟집
물고기 그림 그려진 접시 위에
물고기를 올려놓는다
파닥거리던 물고기가 접시에서 숨을 죽인다
파르르 떨리는 접시를 들고
주방장은 아가미 부분에 칼집을 낸다
두 마리의 물고기가 입을 뻐끔거린다
꽃잎같이 벌어진 아가미
어머니가 웃는다
눈을 감겨주어도
죽을 때까지 공중을 바라보는 물고기
늙고 쪼글쪼글해진 젖가슴을 만지듯
젓가락으로 살을 집어
어머니 앞에 내려놓는다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물고기를 드신다
자기를 꼭 닮은 물고기와
물고기는 죽어가며 무슨 말을 나누었을까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열세살 때 아버지의 유대인 친구에게 작곡수업을 받으러 다녔대요. 당시는 유대인을 박해하던 시절. 아버지가 이 작곡가에 연대감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지요. 작곡가는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기 직전까지 작은 피아노를 가지고 집을 옮겨다녀야 했습니다. 쿤데라는 그에게서 예술에 대한 소중한 성찰을 배웠다고 회고합니다. 그렇지만 "더욱 소중한 것, 그것은 그 잔혹한 여행을 떠나게 되기 전, 드높은 목소리로 아이 앞에서, 예술작품의 구성 문제를 성찰하던 한 인간의 이미지"(<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였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모든 것과 대화할 수 있어요. 물고기는 물고기와. 음악가는 자신의 피아노와. 작가는 자기 앞에 놓인 백지와. 마지막 순간, 아가미 부분에 난 칼집으로 쏟아져 나오는 피처럼 뜨겁고 결백한 말!
진은영 시인
(한국일보. 2012.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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