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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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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7-02 11:32 조회38,7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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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경제민주화를 하려면


‘경제민주화 조항’이라 불리는 헌법 119조 2항의 입안자인 김종인 박사가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의 대선 캠프에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할 것이라고 하니 새삼 민주당 대권주자들의 경제민주화론이 궁금해진다. 특히 궁금한 것은 그들이 과연 한국 자본주의의 체제적 전환을 고민하고 있는가이다.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그들은 단지 관심이 가는 분야에서 좋은 정책과 좋은 제도를 개별적으로 얘기하고 있을 뿐 신자유주의의 대안체제를 총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개별 제도나 정책의 개혁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유형 혹은 패러다임 변경의 문제이다. 따라서 새누리당의 최강 대선 후보가 (만약 김종인 박사의 평소 지론에 따라) 작금의 ‘국가주도 신자유주의체제’를 질서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경제민주화론의 본질로 내세운다면 민주당 후보는 그에 맞서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해야할 것이다.


이때 하나의 ‘자본주의체제’란 금융체계, 기업 간 관계, 노사관계, 상품생산체계, 직업훈련체계, 고용체계 등 시장경제를 구성하는 제반 제도 요소들이 상호보완성과 친화성을 유지하며 (따라서 일정한 성격을 띠며)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체제를 말한다. 예컨대 영미식 자유시장경제체제는 시장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있고, 유럽식 조정시장경제체제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시장 조정을 수월케 하는 제도군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돼 있듯, 경제민주화란 결국 조정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를 위한 제도개혁은 개별적, 부분적, 선별적으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조정시장경제 지향성을 갖춘 하나의 제도 패키지를 마련하겠다는 의지하에 총체적으로 추진돼야 할 일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이 경제민주화의 핵심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노동과 중소기업 섹터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중소기업 중심의 부품소재산업 육성책을 공약으로 내놓는다고 치자. 한국 기업의 99%와 노동자의 88%가 중소기업 섹터에 속한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중소기업 적합 산업인 부품소재산업을 키워 이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의 자본 및 대기업 섹터에 대한 길항력을 높이겠다는 방책은 충분히 훌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좋은 경제민주화 공약이 과연 한국의 현 자본주의체제에서 실현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부품소재산업은 자본주의체제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상품생산체계가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닌 다품종 소량생산에 유리한 곳에서 발전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기업들이 각각 자신들만의 고유 제품 생산에 특화하여 품질로 승부하는 환경을 갖춘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산체계는 자본주의체제를 구성하는 여타 제도 요소들 모두의 집합적인 도움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조성된다.

우선 은행 중심의 장기자본, 즉 소위 ‘기다려줄 수 있는 자본’(patient capital)의 공급이 원활한 금융체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안정적으로 고품질 특화상품을 발굴, 제조, 판매할 수 있다. 또한 국영이나 공영으로 운영되는 숙련형성체계도 필요하다. 그래야 숙련 노동자를 자력으로 (재)훈련하고 (재)교육시킬 형편이 되지 않는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장기고용체계와 협력적 노사관계의 발전을 촉진하는 노동관련 제도들도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 기업과 노동자 양측 공히 숙련 개발 및 숙련 중시 유인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현 자본주의 제도들은 이러한 성격의 것들이 아니다. 금융체계의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중개기능은 취약하고, 숙련형성체계는 미흡하며, 고용체계나 노사관계도 단기적이고 분쟁적이다. 따라서 이 모든 제도 요소들을 망라하는 총체적 제도개혁 방안, 즉 대안적 조정시장경제체제 모델이 제시되지 않는 한 민주당의 경제민주화론과 그 추진의지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201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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