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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우탄트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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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5-16 15:25 조회22,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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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초 이명박 대통령이 미얀마를 국빈 방문했다. 언론에 크게 보도되진 않았지만 보름 전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미얀마 의회에서 연설을 했다. 반 총장은 미얀마의 새 수도 네피도에 있는 의사당에서 연설을 한 최초의 외국 고위급 인사가 됐다. 그 광경을 보면서 미얀마와 한국의 현대사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너무 다른 두 나라이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아시아인으론 처음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시아계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은 우탄트였다. 그는 미얀마를 버마로 부르던 시절, 1960년대 내내 유엔의 수장으로 세계평화를 이끌었다. 라디오를 통해 국제 소식을 접하며 자랐던 세대에게 '우탄트 유엔 사무총장은…'이라고 시작되던 뉴스는 아주 친숙한 일상의 일부였다. 아마 그 즈음 대학의 외교학과를 다니던 반 총장에게 우탄트는 신화적 존재이자 우상과도 같은 롤모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60년대 초만 하더라도 버마의 영향력은 지금과 비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동남아 국가들 중 경제상황이 제일 좋았다.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이었고 전세계 티크목재의 75%를 생산하는 나라였다. 또한 비서구권에서 발전 잠재력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로 꼽히고 있었다. 게다가 민주공화국 체제를 유지하면서 비동맹 반둥회의의 공동 개최국에다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할 정도였으니, 요즘 우리가 미얀마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폐쇄적이고 낙후된 이미지와는 천양지차가 있었다. 우탄트는 61년 함마슐트 유엔 사무총장이 아프리카에서 비행기 사고로 순직한 후 총장직을 이어받아 71년까지 재임했다. 그 기간 중 우탄트는 쿠바 미사일위기, 아랍-이스라엘 전쟁 등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하면서 국제적인 성가를 높였다.


그는 미소 양 진영과 비동맹권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으면서, 유엔의 수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버마에선 62년 쿠데타가 났고, 장기간에 걸친 버마식 사회주의 체제와 독재의 결과가 어떤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요즘 들어 개방화, 민주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하나 미얀마는 여전히 1인당 GDP 1,300달러의 최빈국 반열에 머물러 있다.


우탄트가 사무총장에 취임했을 즈음 우리나라의 위상은? 요즘의 미얀마와 비교하더라도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경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으로는 분단국으로서 내전을 겪은 직후였다. 유엔 사무총장은커녕 유엔에 가입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대낮부터 술 취한 상이군인들이 가두에서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고, 미국에서 보내준 구호물자로 만든 옥수수빵을 전국의 학생들이 매일 받아먹으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이 모든 어려움을 딛고 우리가 단기간에 이룩한 발전은 그렇게 힘든 출발점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소중한 것이기도 하고,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처절한 희생의 피라미드 위에 구축된 것이므로 숙연하게 생각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발전을 하되 인간답게 발전하자고 호소한 것이 민주화의 토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는 흔히 말하는 것과는 달리 동전의 양면이고, 특정 세력이 아닌 우리 국민 모두의 결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에서 쿠데타로 집권했던 군인의 딸인 박근혜는 오늘날 대권을 바라보는 유력한 정치인으로 성장해 있다. 우탄트가 유엔 사무총장을 지낼 때 유엔사무국에서 회계 실무를 보던 아웅산 수치라는 여직원은 오늘날 버마 민주화의 상징과 같은 지도자가 되어 있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2.0버전이라는 진부한 선택을 넘어 우탄트나 아웅산 수치 정도의 도덕적 역량을 지닌 인물이 될 수 있을까. 5월 16일 오늘은 군사쿠데타의 기억이 또 떠오르는 날이다. 현재의 박근혜가 아버지의 쿠데타, 그리고 우리 민주화 투쟁사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는가 하는 점은 이 나라의 앞날에 큰 의미를 지닌다. 버마와 한국의 역사가 보여주듯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일보. 2012.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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