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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혁] 유로존 위기, 본질서 답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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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6-08 11:39 조회27,0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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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를 단일통화로 쓰고 있는 유로존의 위기는 잘못 설계된 통화연합에서 비롯된 금융·통화위기가 정책실패를 거쳐 재정위기로 확산된 것이다. 세수에 비해 과도한 복지 지출과 같은 재정적인 요인에서 촉발된 위기가 아니다. 사실 재정 통계를 조작해 유로존에 가입한 그리스를 논외로 하면, 2007년까지만 해도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재정의 모범사례로 평가받았고,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도 1990년대에 비해 재정 상황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이후 금융·통화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부채가 크게 늘어나고 경기가 위축되었기 때문에 재정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1997년과 2008년에 이어 우리나라에 또 한 번 위기가 엄습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유로존 위기의 본질을 알아야 대응 방안도 제대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유로화가 출범할 당시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유로존이 독일과 프랑스의 주도하에 단일통화와 정책규율을 도입함으로써 금융비용을 낮추고 유럽 통합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하지만 자국 통화를 포기한 회원국들 간의 소득 격차가 큰 상황에서 그 격차가 원활하게 줄어들지 않을 경우 어떻게 역내 불균형을 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됐다. 회원국들은 자국 통화의 가치를 조정해 비용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역내 불균형을 시정하는 대안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생산성과 임금을 직접 조정하거나 국가 간 노동력의 이동과 교부금의 이전을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조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거나 임금을 깎는 데는 고통이 수반되고, 단일 국가라는 인식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력의 이동과 교부금의 이전을 확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유로화 채택 이후 아일랜드 등 유로존의 후발국은 금융비용을 상당히 낮출 수 있었고 외국자본도 대규모로 유치했다. 하지만 이렇게 조달된 자본은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투자되지 않고 부동산이나 금융 부문의 거품을 키우는 데 이용됐다. 거품이 꺼지면서 부실이 현실화되자 이 국가들은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적극 개입했고 그 과정에서 정부 부채가 크게 늘어났다. 설상가상으로 본질적인 금융·통화 문제는 간과한 채 ‘재정건전성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모두 다 긴축해야 한다’는 잘못된 처방까지 내려지면서 유로존 위기는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일부 국가들의 실업률이 20%를 넘어서면서 긴축 정책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있고, 유로화를 포기하는 국가가 생길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으며 예금 인출과 자본 도피 사태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이 이와 같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통화연합을 넘어 재정연합과 금융연합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유럽중앙은행은 이미 발행된 회원국의 국채 금리가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 시장에서 직접 매입함으로써 최종 대부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회원국들은 상호 재정 규율을 부과하는 조건으로 지급을 공동 보증하는 유로 채권을 발행해 개별 회원국의 국채를 흡수해야 한다. 또한, 유로존 차원의 예금보험과 금융구조조정 기제를 확립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이와 동시에 여유가 있는 채권국들이 경기부양을 추진함으로써 역내 불균형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을 계기로 위기의식을 극대화함으로써 이와 같은 정책의 동력을 얻을 것인지, 아니면 유로존 가입조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그리스까지 구제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과는 달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채무상환능력이 크게 개선됐고 2005년 이후 부동산 거품이 확산되는 것도 막았으므로 막연한 위기감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2008년에 경험했던 것과 같은 국제금융시장의 충격에 대비해 외화를 확보하고 환율이 유연하게 조정되도록 하는 한편, 해외 수요가 당분간 위축될 가능성에 대비해 내수를 진작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임원혁, 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
(경향신문, 201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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