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다른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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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6-15 13:46 조회22,5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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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6월 13일] 다른 신문
신문은 같아야 하는가 달라야 하는가. 결코 뚱딴지 같은 물음은 아니다. 사람들은 모든 신문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어느 신문을 읽을 것인지 선택을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문은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신문이나 하나 보면 된다고 믿는다.
신문의 주된 기능이 여론 형성에 있다고 보면, 신문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좌파든 우파든, 급진적이든 극단적이든, 신문사는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문 본연의 기능을 사실 보도라고 보면, 신문은 서로 비슷하거나 같을 것이다. 사건은 한정돼 있고, 그것을 뉴스화해 보도하다 보면 구체적 표현만 조금 다를 뿐이지 크게는 동일한 기사이기 때문이다.
대중 신문의 역사는 아직 20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전신 기술의 보급으로 신속한 뉴스 전달의 매체가 되면서 '사설보다는 뉴스' 또는 '의견보다는 팩트'를 중시했다. 물론 신문의 역할이 뉴스 보도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신문사의 개성이나 그에 따른 여론 형성의 기능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선 보도할 사실을 선택하는 데서 경향이 드러나고, 선택한 사건을 어느 정도 크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색채가 나타난다.
그러면 지금 우리 신문들은 서로 같은가 다른가. 경제나 스포츠 전문지를 제외한 주요 중앙일간지만 10종이다. 뉴스 매체로서는 형식이나 내용이나 흡사하다. 여론 형성이나 주도의 면에선 조금 다르긴 하나, 결코 다양하지는 않다. 누구나 잘 알고 있다시피, 보수와 진보로 구분돼 있을 뿐이다. 성격이 불분명하다 싶은 신문은 어느 한 쪽으로 쳐버린다. 단적인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 사회엔 두 가지 신문만 존재한다. 논조가 두 가지 뿐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측면이긴 하지만, 우리 신문들의 재정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에서는 대부분 같다. 그것도 굳이 나누자면, 그런대로 버틸 만한 신문과 버티기 자체가 힘겨운 신문의 두 부류가 있다. 운영이 힘든 신문은 관성적으로 뉴스란 상품을 만들어 가까스로 존재하는 느낌마저 준다. 전망도 전혀 밝지가 않다. 젊은이들은 좀처럼 신문을 읽지 않는다. 포털사이트나 허공을 가로막는 대형 전광판의 한 줄 뉴스로 충분하다. 그것마저 요즘은 손바닥 안의 스마트 폰에서 해결한다. 조금 관심이 있으면 핸드폰으로 심층 해설과 댓글을 통한 여론도 확인할 수 있다. 신문의 유가 부수나 광고 수입도 계급처럼 철저히 서열화되어 있다. 뒤처진 신문은 앞쪽의 신문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경영이 어려운 신문사는 왜 형편이 조금 나은 신문사를 모방함으로써 생존하려 할까. 그것이 위험 부담이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오히려 존폐의 위기를 혁신의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혁신의 길은 순위가 앞선 신문과 같은 신문이 아닌 다른 신문을 만드는 데 있다. 예컨대 보도할 사건을 선택할 때나 헤드라인을 뽑을 때 선정성을 완전히 배제한다. 일반의 경향이 사실과 무관하게 눈길을 끄는 데 우선적 가치를 두고 있을 때, 철저히 정공법으로 나간다. 주요 기사를 빠뜨리지 않되 다른 신문이 꺼려하는 것들을 충실히 싣는다. 사회의 구석에 이런 것들도 있다는 현실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스포츠에서도 비인기 종목을 우선적으로 보도한다. 정치적 스탠스는 아예 반론의 여지가 없도록 완벽한 중립을 취한다. 적어도 이런 신문이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엔 전혀 대중성이나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듯해도 다른 신문들과는 다른 신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만 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열릴 것이다. 지금처럼 바로 앞순위의 신문만 허덕이면서 쫓아가는 모양만 벗어나면 적어도 현재보다는 나은 독보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신문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신문이 없을 때 잠시 대신 읽히는 신문이 아니라, 다른 신문에 없는 것을 찾는 독자에게 필요한 신문이 매력적이지 않은가. 지금 곤경에 처한 신문만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다.
차병직 변호사
(한국일보, 2012.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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