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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조직경제학으로 본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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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17 22:36 조회31,7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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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 결과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고 야권연대는 140석에 그친 데 대해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감안하면,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렇게 말아먹다니…” 하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경제조직을 연구하는 조직경제학의 관점에서 평가해 본다면, 야권의 140석 확보도 과분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선거일 며칠 전 고교시절 은사로부터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e메일을 받았다. “이제 거의 선택할 후보와 정당이 정해졌을 것이지만 한 번 더 심사숙고하시기를 바랍니다. … 선동에 속지 말고 양심을 지켜야 함을 명심하십시오. 노소간 기권하지 마십시오. 민심이 천심임을 보여 주십시오. … 우리 등산회는 투표를 위해 등산 일자를 미루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나름대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적극적인 의사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다. 야권이 심판론과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동안 장년층과 노년층의 불안감이 상당히 심각해졌고, 반(反)야권연대를 향한 기층에서의 자발적 캠페인이 조직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불안감이다. 국민 대중이 느끼는 불안의 뿌리에는 세계체제의 변동, 분단체제의 위협, 국내 사회경제적 격차 등 환경요인이 있다. 이명박 정부에 국민들이 등을 돌린 것은 이러한 전면적 환경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폐쇄적 의사결정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다수 국민들이 요구한 바의 합리적 핵심은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을 청산하되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기준에서라면 야권연대는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어려웠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모두 공천과정에서 공익보다는 특정 당파나 개인의 이익이 관철되는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리는 특정 집단의 비상식과 집요함에 대해 야권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걱정스러운 수준이었다.


전략계획을 세우는 조직 능력에서 야권연대는 놀라울 정도의 무능력을 보여주었다. 비전과 메시지는 객관적 환경분석을 토대로 현장의 이해관계에서 분리된 집단에서 과학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야권은 연대에는 성공했으나 전략 구축과 실행에는 실패했다. 통합진보당은 완고한 이미지로, 민주통합당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주통합당의 무능은 향후 대선에서의 전망도 어둡게 하고 있다. 자신들도 책임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즉각폐지론에 휘말려 들어간 점, 선거일 직전 부산에서 <나는 꼼수다> 멤버와 함께 유세한 점, 충청·강원 지역에 조직적 관심이 없었다는 점 등은 조직의 전략 형성 기능이 마비된 상태를 연상케 했다.


이에 비하면 새누리당의 진화는 괄목할 만했다. 이명박 정부가 쏟아내는 악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커서 정당 존립의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지만, 상당한 정도의 조직 혁신 노력을 보여주었다. 당 이름을 바꾸고 상징색깔을 바꾸었다. 비상대책위를 꾸리고 김종인·이상돈·이준석 등과 같은 혁신 세력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젊은층과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 팀으로 영입된 외부 전문가들이 홍보기획 전략을 세우고 메시지를 관리했다. 민생 우선 원칙을 일관되게 언급하고 복지 확대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경제조직은 물론 정치조직도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발전할 수 있다. 조직 내에는 적응과 변화에 맞서고 조직을 폐쇄적으로 만드는 요인과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좌우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기득권층과 이념적 완고파는 항상 존재한다. 이들을 제어하는 것이 조직 혁신의 관건이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야권이 조직 내 기득권층과 완고파에게 끌려다녔다고 한다면, 여권은 보다 더 조직적·전문적으로 대중에게 접근했던 것 같다. 새누리당이 나름대로 극우적 이념성을 견제한 데에는 외부 전문가 세력과 리더십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체제와 국내체제는 일종의 시스템 변동의 과정에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군사적·금융적 위계질서가 흔들리고 있으며, 재벌 중심의 위계구조가 국민경제의 활력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집중화된 권력을 기반으로 한 위계질서와 시장 만능의 무정부적 상태에 다양한 생태계와 네트워크적 질서가 도입되어야 할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당도 다양성과 복잡성을 수용하고 이를 질서화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려워졌다. 폐쇄된 위계구조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형태로 재조직화할 필요가 있다. 올드미디어도 뉴미디어도 모두 어느 순간 폐쇄적 위계구조처럼 작동할 수 있다. 개방성과 유연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 내부에 개방성과 유연성을 목표지향적으로 탐색하고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활동과 기능이 존재하는가가 조직의 성패를 결정한다. 정당들에도 조직 혁신은 생명선이 되었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경향신문. 2012.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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