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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독선의 미덕과 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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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5-23 13:21 조회26,2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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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칠순의 노의사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젊은 시절 경인지역의 명문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20대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는 세상이 모두 자기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잘 마치고, 거기서 의사로 오랜 세월 활동했다. 말년에 귀국해 마지막 임무로 삼고 종합검진 병원을 맡아 몇 년째 지내는 중이다.


짧은 시간에 그가 회고한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런 것이다. "미국에 도착해 지내면서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세상에서 최고인 줄 알았던 내가 별것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인재들은 도처에 즐비했어요. 기고만장하던 시절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제가 아니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비로소 확인했습니다. 의학계엔 특히 내가 최고다, 이 분야에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어리석은 믿음이지요."


그리하여 그는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한평생 자기 소임을 다할 수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한마디는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었다. 어디 의학계뿐이랴. 법조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정치계는 더하다. 언제 어디서나 그랬지만, 특히 요즘 우리 현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자기가 최고라는 그릇된 자신감은 자기만 옳다는 독선으로 바뀌기 쉽다. 독선이 팽배한 사회,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어떤 것에 소신과 자신감을 갖는 일은 미덕에 속한다. 그 믿음을 실행에 옮기는 데 필요한 투지와 열정은 장려된다. 하지만 거기까지의 과정은 허용되는 범위가 따로 있다. 자기 내면의 세계나 자기 중심의 사적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아가 확신이 강화되어 나타나는 고집까지도 여론의 공론화를 위한 전단계의 토론의 장에서는 허용된다.


그렇지만 사회체계의 모든 영역에서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일반적 흐름에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불특정의 상대방까지 고려해 주장의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예술을 통한 표현이면 모르되, 정치적 의사의 표현은 다르다. 그 다름을 규정하는 불문율이나 자발적 절제는 결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의사를 정상으로 소통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반대 의견을 가진 자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을 따르는 것이 자아와 정체성을 토대로 하는 사회적 인간의 역할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나만 옳다는 독선은 우리 편만 옳다는 독선으로 변신한다. 옳기 때문에 무조건 이겨야 한다. 어느새 그런 논리가 이 시대의 정의론이 돼버렸다. 그런 생각에서 비롯하는 행동은 정치적 의사의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난다. 정상적 싸움을 넘어 이 사회를 혈투의 장으로 만들고 만다. 결과에 대한 승복은 없으며, 매순간을 기습과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당파의 선명성이 부각된다. 헌법학이나 정치학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통합 마저 무산시킨다.


독선은 목적 달성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따라서 내부적 절차를 경시하거나 아예 무시한다. 최근에 드러난 일부 정당의 사정이 그러하다. 그리고 행동은 과격해지며, 주장의 표현은 날이 곤두선다. 언어를 사용하면서 내심의 의도와 현실에서 기대하는 효과 사이에 괴리가 커진다. 그 괴리는 보통의 상황에서는 새 가능성을 향한 일종의 부추김으로서 현실적 과장이나 유머가 될 수도 있지만, 첨예한 대립의 사태에서는 허위와 공허함을 일상화할 뿐이다. 그래서 빈말이고 막말이고 판을 친다.


독선에 사로잡히면 인내를 잃고 기다리지 못한다. 옳지 않고 못마땅한 것을 순간에 거꾸러뜨리는 일은 혁명이다. 혁명을 할 정도가 아니라면, 규칙에 따른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습관도 길러야 한다. 불복종이나 행동민주주의는 다른 차원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독선이란 말은 재미있다. 옳은 것은 참인데,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거짓이 된다. 그것은 실제로는 이미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회적 상대성의 교훈이다.


차병직 변호사
(한국일보. 201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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