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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미국의 ‘합종’, 중국의 ‘연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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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09 12:09 조회21,7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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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이 관심을 끌고 있다. 작년 국제항로의 항해권 보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다른 국가들 사이의 영토분쟁에 개입하지 않은 원칙을 우회에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했던 것이 전조였다. 최근에는 호주에 미 해병 주둔 방침을 밝히고, 동아시아 국가들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는 등 자신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도 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우선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군사력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다. 11월29일 자체 제조한 항공모함이 두 번째로 출항했다. 12월7일에는 후진타오 주석이 해군의 전투태세 강화를 강조했다. 동아시아가 미·중이 각축을 벌이는 일차적 무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때 이르게 현실로 되어가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중국 전국시대의 합종연횡에 비유할 수 있다. 소진 등이 주장했던 합종론은 서쪽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던 진을 견제하기 위해 북쪽의 연에서 남쪽의 초로 이어지는 세력들이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북쪽의 남한, 일본에서 남쪽의 호주로 이어지는 종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은 현대판 합종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진의 장의는 동쪽의 주변 국가들을 군사적,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하나씩 진의 편으로 끌어들여 합종구도를 무너뜨렸다. 이러한 장의의 주장은 연횡론으로 불렸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진은 중원 지역의 주요 교두보를 차지하며 이후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현재 중국도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판 연횡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진 등의 합종론은 진의 동진을 상당 기간 막는 효과를 낳았다고 한다. 그러나 진의 부상을 막기 위한 합종구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부상하는 진이 주변국을 하나하나 굴복시키며 결국 중국을 통일했으니, 지난 역사에서는 연횡론이 승리했다. 합종론의 근본적인 약점은 여러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미국의 합종의 포위망도 시간의 검증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동아시아로 복귀한다는 선언은 요란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원을 동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호주에 주둔하게 될 250명의 미 해병이 중국의 군사력 증가를 억제하는 데 얼마나 실질적인 의미가 있겠는가?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과의 교역을 훨씬 초과하고 있는 나라들과의 경제동반자협정이 중국에 대한 봉쇄망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겠는가?

 

이처럼 현대판 합종론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연횡론으로 결정되는 동아시아 질서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는 또 다른 패권의 출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합종도 아니고 연횡도 아닌 새로운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중이 추구하는 합종과 연횡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한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편에 쏠리는 것이 아니라 패권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상상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현실적으로 다른 국가와의 군사적 대결을 전제로 하는 동맹이 아니라 다자안보협력으로 역내의 안보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이 유일한 활로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관리하고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일방주의적 행동을 막기 위한 기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국의 물리적 힘이 약화된다고 냉전 시기 구축한 쌍무동맹관계에 의존하는 것은 이러한 길로부터 멀어지는 선택이다. 미국은 힘의 약화를 인정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패권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다자협력의 틀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 자신과 동아시아 모두에 이익이 되는 길이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환영받는 손님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경향신문. 201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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