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 중국을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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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2-24 13:31 조회22,9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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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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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무 웅 (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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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이래 중국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알다시피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고 땅덩이가 넓은데다 유구한 문화전통을 지닌 거대국가이므로, 이런 나라 옆에 붙어있다는 지정학적 위치만으로도 늘 문제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황허 유역에서 출발한 한족(漢族)문명이 끊임없이 비한족세력을 흡수 동화시키면서 중국대륙 전체로 지배영역을 확장해온 지난 4천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중국문화의 압도적 영향을 감수하면서도 의연히 국가적 독립을 지켜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 유럽열강의 동아시아 침략은 이 지역의 정치지형에 커다란 혼돈을 가져왔고 특히 그 중심국가인 중국에 심대한 상처를 안겨주었다. 아편전쟁(1840~42)·청불전쟁(1884~86)·청일전쟁(1894)에서 잇단 굴욕을 맛본 중국인들로서는 자력으로 대륙에서 외세의 침탈을 물리치는데 성공한 194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존심의 회복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오쩌둥에 의해 선포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인데, 유감스럽게도 뒤이은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중국과 한국은 40여 년간 적대적 단절상태로 지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결과 우리의 몸은 유교를 비롯한 전통중국의 유훈에 여전히 물들어 있으면서도 우리의 머리는 현대중국의 정치적 선택과 이념적 지향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야말로 균형잡힌 중국 이해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됐다. ‘중공’ ‘죽(竹)의 장막’ 같은 낱말로 중국이 지칭되던 시절 그래도 우리에게 중국에 관해 공정한 지식을 전해주던 저자의 한 사람으로 나는 미국의 저명한 중국학자 존 K. 페어뱅크(1907~1991)를 들겠다. 1960년대에 주일대사를 지낸 에드윈 라이샤워(1910~1990)와 공저로 나온『동양문화사』(全海宗·高柄翊·閔斗基 공역, 을유문화사 1964)는 젊은 시절 내가 숙독한 명저의 하나였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동양’이란 말에서는 어딘지 일제잔재가 느껴지는데, 요즘 같으면 원저의 제목대로 당연히 <동아시아 문명사>란 표제로 간행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후 여러 번 개정판이 나왔으며, 지금도 독자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페어뱅크 사후에 출간된 『신중국사』(김형종 외 옮김, 까치 2005) 역시 저자의 혜안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명저이다. 중국사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듯이 이 책도 중국의 기원부터 서술해나가지만, 그것은 근대중국의 해명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의 필요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최근에 내가 읽은 책『열린 제국 : 중국, 고대~1600』(발레리 한센 지음, 신성곤 옮김, 까치 2005)은 페어뱅크의『신중국사』가 소략하게 다루고 넘어간 장구한 중국사의 앞부분, 즉 문자기록이 시작된 기원전 1200년경부터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온 명말(明末)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두 저서가 바라보는 곳은 상반되지만, 밝히고자 하는 내심의 목표는 사실상 동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대·중세 중국문명의 위대한 성취와 근대중국의 참담한 굴욕은 서로 무관한 별개의 것이 아니라 마주보며 상대를 비추는 두 개의 거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린 제국』이 나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가 여성임을 상기시키는 여성주의적 시각 뿐만 아니라 생활사적·문명교류사적 관점이 역사해석의 새로운 시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저자는 “역사기록에서 황제의 중요성을 과장하고 다른 사회집단의 공헌도를 축소해온 전통적 역사의 모델 이른바 왕조사관(王朝史觀)을 따르지 않는다”(p.16)고 천명하는데, 그런 입장에서 저자는 불교의 전래가 왕조의 교체보다 민중들의 일상생활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아마 이보다 더 논란이 될 만한 것은 저자가 중화주의 내지 중화민족주의의 뿌리깊은 전통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설명을 읽어보자.
오늘날 우리가 중국이라는 단수명사로 부르는 존재의 정체성이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진·한의 통일제국을 거치는 동안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저자는 전국시대에는 단수 아닌 복수의 중원국가들이 황허 유역의 화북지역에 할거하고 있었으며, 양쯔강 유역은 중국영역의 남쪽 변경을 이루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p.76 참조) 한편, 5세기 초 불법을 구하러 인도에 왔던 한 중국인 승려는 인도의 수준높은 학문에 경탄한 나머지 “다시는 변방국가에 태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는데, 발레리 한센에 의하면 자신의 조국을 변방국가라고 말한 중국인은 거의 전무후무라고 한다. 어떻든 우리는 이런 서술 속에서 ‘중국’의 절대적 중심성이 상대주의의 저울 위에 올려지는 것을 본다고 하겠다. 중국에 관해 쓰여진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정말 양서라 할 만한 것을 천거하는 일은 내 능력 밖의 일이고, 다만 내가 읽은 범위 안에서 두 권의 신간을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책무를 다하겠다. 하나는 너무도 유명한 헨리 키신저의 최근 저서『중국 이야기』(권기대 옮김, 민음사 2012)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언론인 카롤린 퓌엘(Caroline Puel)의 『중국을 읽다』(이세진 옮김, 푸른숲 2012)이다.
키신저의 책에 대해 말하기 전에 최근의 신문기사 하나를 소개하겠다. 지난 2월 7일자 <한겨레>(15면): 지난 4일 독일 뮌헨 국제안보포럼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진행한 <미국·유럽과 아시아의 굴기>주제의 토론에서 패널로 나선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은 “아랍의 봄은 중국에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뒤, 참석자인 장즈쥔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신들은 아랍의 봄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중략) 그러나 장즈쥔 부부장은 “중국에 소위 아랍의 봄이 일어난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맞받았다. “서구 기관들의 여론조사에서도 중국 국민들은 정부에 70%가 넘는 지지를 표했다. 개혁개방 30여 년간 중국이 이룬 성취는 역사상 어느 단계보다 뛰어나다”고 근거를 댔다. 이 기사에서 우선 내 눈길을 끈 것은 키신저의 건강이었다. 그는 1923년생이므로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흔인데, 그 나이에 국제적인 포럼의 사회를 맡을 만큼 지적인 활동력을 과시하는 것이 오직 놀라울 뿐이다. 하기는『중국 이야기』같은 두툼한 저서가 간행된 것도 2011년이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존 매케인 같은 유명한 미국 정치인의 국제정세에 대한 관점이다. 매케인은 지난번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으므로 단순히 개인적 견해의 표명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미국 보수층 전체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자부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자신을 저우언라이 앞에 선 덜레스 같은 반공투사로 착각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지금은 1950년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도 다수의 미국인들이 매케인과 같은 시대착오적 우월의식에 젖어 냉전시대의 눈으로 중국과 아시아·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키신저의『중국 이야기』는 미국 독자들에게 일정한 교정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중국 이야기』의 번역에 대해 한마디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번역은 대강의 뜻만 옮기면 되는 속 편한 작업이 아니다. 언어란 단순히 사고의 결과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고의 과정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글의 번역에서 원저자의 사유의 밀도와 지적 태도가 번역문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과욕이 아니다. 키신저라고 하면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 책략가이자 탁월한 국제정치학자이기도 한데, 번역판 『중국 이야기』의 문체는 조금도 키신저답지 않게 엉성하고 졸렬하다. 심지어 터무니없는 오역도 더러 눈에 띈다. 예를 들어보자.
이것은 6·25전쟁 중 중국군의 참전을 앞두고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지점을 묘사한 대목인데, 번역문은 상식에 어긋난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물론 번역에서는 발신자와 수신자 간의 문화적·언어적 차이 때문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생기고 불가항력적 근사치로 때워야 하는 수도 적지 않다. 특히 시(詩)와 같은 민감하고 섬세한 언어조직의 경우 번역은 반역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다종의 언어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구현실에서 번역의 결정적 역할은 결코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 일찍이 19세기 후반부터 백여 년 넘는 동안 일본의 유럽어 번역자들이 치른 노고는 그들에게 그야말로 일본 근대화의 주역이라는 영예를 안길만한 것이었다. 지난 세월 우리의 번역자들도 그 일본인 선배들의 수고에 덕본 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번역문화도 자립할 때가 됐다. 유럽어의 복합적 구문을 감당할 만큼 우리말의 표현가능성 자체가 어느 정도 신장되었다고 믿어지는 것이다. 번역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 그리고 번역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바이다. |
염무웅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다산포럼, <이달의 책>. 201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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