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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시민 주도의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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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4-20 10:00 조회30,4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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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십육년 전에 처음 집을 장만했다. 지은 지 거의 사십년 된 스무평짜리 시멘트 벽돌집이었다. 너무 낡아서 2005년경부터는 비가 샜지만 지붕에 천막을 씌우고 살다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리를 시작했다. 목표는 에너지를 물 쓰듯 해야 겨우 미지근해지던 집을, 에너지를 완전히 자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조금도 내놓지 않는 집으로 만드는 것.
 

수리 전에 1월 한달 동안 난방을 위해 때야 했던 석유는 세 드럼 가까이 되었다. 겨울 한철 동안 사용한 석유는 약 열 드럼, 2000리터였다. 지금의 석유 가격으로 계산하면 300만원이 들어간 셈이고, 에너지의 양으로 환산하면 2만 킬로와트시 이상을 소비한 것이다.

 

해마다 꽤 많은 돈과 상당량의 에너지를 잡아먹던 집을 완전한 에너지 자급형으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2008년 한해 동안 오스트리아에서 배운 파시브하우스 지식을 모두 동원해서 차근차근 수리를 시작하여 이제 거의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량을 계산해주는 정교한 쏘프트웨어를 이용해서 얻은 결과는 연간 난방에너지 소비량 1250킬로와트시. 수리 전의 거의 20분의 1로 감소한 것이다. 여기에다 온수를 데우는 데 일년에 1500킬로와트시, 전기를 4000킬로와트시 사용하게 되니 에너지 자급, 탄소 제로로 만들려면 모두 5700킬로와트시의 에너지를 자체 생산해야 한다.


방법은 하나.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발전기를 지붕 위에 설치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집은 남향이고, 집 위에 약 40제곱미터의 지붕이 남쪽을 향해 앉아 있다. 이것을 태양전지판으로 완전히 덮으면 발전용량 5킬로와트의 훌륭한 발전소가 생겨난다. 연간 에너지 생산량은 약 6000킬로와트시. 영광이나 울진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의 용량이 100만킬로와트니 그것의 100만분의 5밖에 안되지만, 주택 하나를 에너지 자급, 탄소 제로로 만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발전소다.


필요한 건설비용은 약 1400만원. 적은 돈이 아니지만 4조 가까운 원자력발전소 건설비용의 100만분의 3.5 정도니 큰돈도 아니다. 게다가 태양광발전소가 수명을 다하는 이십오년 후까지 전기요금은 조금도 내지 않아도 된다. 경제성을 따져도 꽤 이익이다.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에서 일년에 약 6000킬로와트시, 월 500킬로와트시의 전기를 사용하면, 요금은 약 12만원, 일년에 144만원이 나온다. 이걸 이자율 5퍼센트와 기간 이십오년을 적용해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030만원이라는 액수가 얻어진다. 태양광발전소 건설비보다 630만원이나 더 많으니, 결론은 명쾌하다. 어디서 돈을 융통해서라도 지붕에 전지판을 올리면 에너지 자급도 달성하면서 경제적인 이익도 얻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만큼 원자력과 화력 전기를 쓰지 않는 셈이니 원자력발전도 줄이고 기후변화를 늦추는 데에도 기여하게 된다.


작년 3월 후꾸시마 원전 사고 후 한국에서도 탈핵, 탈원전이라는 말이 꽤 널리 쓰이게 되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벗어나자는 말인데, 어떻게 탈하자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 깊지 않은 것 같다. 탈원전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우리나라처럼 일인당 전기소비량이 유럽의 웬만한 선진국보다 많고, 거기에 더해서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는 나라에서 원자력발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어떻게’에 대한 모색도 깊게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실천해나가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탈원전은 에너지 전환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은 시민의 주도와 실천을 통해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몰아내고 모든 에너지를 재생가능 에너지로부터 얻음으로써 에너지 이용을 통한 자연 파괴와 그 파괴의 대가를 최소화하여 좀더 생태적이고 자유롭고 조화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에너지 전환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활동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하나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풍력발전소와 태양광발전소가 많이 늘어나도 에너지 소비가 계속 늘어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되고 만다. 두 활동이 함께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민이 주도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에너지 전환이 한세대 이상의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오십년 후의 성취를 내다보고 정책을 수립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요행히 수립되었다고 해도 지속되기 어렵다. 정권이 여러차례 바뀌는 동안 폐기되거나 변형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독일의 사례는 지속적인 시민 주도와 실천이 에너지 전환의 성취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스웨덴 시민들은 이미 1980년에 2000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한다는 결정을 끌어냈다. 그러나 삼십년이 넘은 지금도 당시에 돌아가던 원전이 거의 그대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2010년에는 의회에서 새로 원전을 건설해도 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후꾸시마 사고 후에도 이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민들이 1980년의 결정을 최종 승리로 여기고 에너지 전환의 길을 더이상 모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부터 지금까지 스웨덴의 에너지 소비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전기 수요 중에서 원자력의 비중도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1980년의 결정을 끌어내는 데 열심히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 결정이 유지될 수 있을지 우려를 표했지만, 그들은 이제 노인이 되었다. 지금 사회를 끌어가는 사람들은 에너지 전환에 큰 관심이 없다.


독일은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에너지 전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수그러든 적이 없다. 원자력발전 반대 운동과 시민 주도의 에너지 전환 운동이 사십년 이상 세대를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작년 후꾸시마 사고가 일어난 후 벌어진 여러차례의 원자력 반대 시위에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수십만명이 참여했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에너지 전환 운동의 결과 백만개 이상의 태양광발전소와 수만개의 풍력발전기가 세워졌다. 2011년에는 전력수요의 20퍼센트가 재생가능 에너지로 충당되었다. 17퍼센트를 공급한 원자력을 최초로 넘어섰다. 그뿐이 아니다. 에너지 소비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지난 이십년 동안 약 10퍼센트 가량 줄어들었다. 그래도 에너지 전환의 성취까지는 아직 수십년이 남았다. 2022년경에 원자력발전소가 모두 사라지지만, 화석연료는 2050년이 되어야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기 때문이다.


독일과 스웨덴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탈원전, 에너지 전환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수많은 시민이 열심히 참여하고 실천한다고 해도 오십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고 평생을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집은 에너지 자급, 탄소 제로로 거듭나게 되었으니 적어도 우리 가족은 앞으로 수십년은 원자력에 휘둘리고 흔들리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집에 담겨 있는 에너지 전환의 정신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달될 터이니, 수십년 후에도 그 정신이 세대를 넘어 이어져갈 것이라는 기대도 해본다.

 

이필렬 / 파시브하우스 디자인연구소 소장

(2012. 3. 14. 창비문학블로그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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