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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실내온도 20도 ‘썰렁한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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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1-25 13:45 조회21,1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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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겨울이 시작될 때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의 실내온도를 섭씨 19도로 내리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은 충성심을 발휘해 1도 더 낮추어서 18도로 맞추었다. 그때부터 정부청사의 겨울철 실내온도는 18도로 고정되었다. 올 겨울에도 18도 유지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지난해 9월 정전사태를 겪은 탓인지 전력 예비율 확보를 위해 큰 민간업체에도 이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18도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민간업체에 대해서는 청와대보다 2도 높은 20도로 맞추라고 권장한다.

 
공무원들은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 내복과 조끼를 입고 근무하지만, 그 정도로는 한기를 쫓아내기 어렵다고 불평한단다. 어떤 민간회사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20도에도 견디기 어렵다고 해서 방한복을 제공했다고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정말 온도를 18도로 맞추어놓고 근무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런 조건에서 일해야 한다면 나는 최고 권력과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그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추위로 병이 들어 평생 고생하며 살아갈 것 같기 때문이다.

 

연령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우리가 속옷과 긴팔옷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아서 일하기에 적합한 실내온도는 20도이다. 이때 우리 몸에서 열이 발생하는 속도와 이 열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속도가 같아져서 쾌적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추울 때 옷을 더 입고 더울 때 옷을 벗는 이유는 이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실내온도가 18도여도 옷을 두툼하게 입으면 열 발생속도와 제거속도가 같아지기 때문에 한기를 느끼지 않고 일할 수 있다.

 

그런데 20도에서도 방한복을 덮어쓰고, 18도에서 내복과 조끼를 입고도 한기로 고통스럽다고 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근무자들이 모두 노년에 접어들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직원들의 연령은 대부분 60세 미만일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건물이 에너지 측면에서 너무 부실하기 때문이다. 실내온도가 20도라고 해도 바깥온도가 영하 5도일 때는 단열이 거의 안된 콘크리트벽과 복층유리 표면의 온도는 12도에도 못 미친다. 이런 공간에 앉아 있으면 복사현상 때문에 벽이나 유리 쪽에서 끊임없이 우리 몸의 열을 빼앗아간다. 한기를 느껴도 꽤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철인이나 도인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 정상적으로 근무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에서 간섭하기 전 겨울철 사무실의 실내온도는 대체로 25도 내외였다. 단열이 부실한 건물에서는 이 온도에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쾌적함을 느낀다. 이때 벽체 표면의 온도는 14도가량으로 올라가고, 둘의 평균온도는 반올림하면 정확하게 20도가 된다.

 

종종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겨울철 적정온도 20도보다 훨씬 높으니 에너지 낭비 좀 그만하라고 비난했지만, 그게 딱 맞는 온도였던 것이다.

 

정부의 조사팀에서는 실내온도를 측정할 때 사무실 중앙, 창쪽, 벽쪽의 온도를 재서 평균을 낸다고 항의할지 모르지만, 그건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다.

 

유리와 창틀 등의 표면온도를 재야 정확한 온도가 나온다. 단열이 제대로 안된 건물에 준공허가를 내주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20도를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앞뒤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먼저 20도에서도 쾌적함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는 건물을 짓도록 해서 준공허가를 내준 다음에 20도를 지키는지 감독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그런 건물 안에서는 정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실내온도가 20도 이상 올라가면 덥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20도에 맞출 것이다. 단열과 밀폐를 잘하고 3중유리 단열창호를 사용하는 패시브하우스를 널리 보급하면 실내온도 20도 맞추기는 그냥 해결된다. 그때까지는 에너지를 좀 더 쓸 수밖에 없다. 서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햑부 교수
(경향신문. 201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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