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침묵의 봄, 소란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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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30 13:52 조회30,1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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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해로 기록된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나온 지 꼭 반세기가 되기 때문이다. <침묵의 봄>은 살충제가 자연과 인간에게 끼치는 가공할 폐해를 과학적이면서도 시적으로 고발한 명저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권리가 있고 자연은 오로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착각하던 시절에 말 그대로 혁명의 물꼬를 튼 책이다.
모든 혁명이 그렇듯 <침묵의 봄> 역시 엄청난 저항에 맞닥뜨려야 했다. 살충제 생산업계는 이른바 전문가, 과학자, 친기업적 언론인들을 총동원해 카슨의 메시지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비과학적이다, 악의에 찬 반기업적 선전이다, 사이비 환경보호론자의 환상이다 등등. 심지어 자본주의 경제를 타격하려는 공산주의자의 책동이라고까지 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침묵의 봄, 소란한 여름'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침묵의 봄>이 미국 사회에 폭탄을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이래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과학저술이라는 평까지 나왔다.
발칵 뒤집힌 화공약품 산업과는 달리 대중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책이 나온 바로 그 해 말까지 전미 각 주에서 40여종이 넘는 살충제 규제법안이 제출되었고, 케네디 행정부의 과학자문위원회는 살충제와 제초제의 오남용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침묵의 봄> 출간, 그리고 몇 년 뒤 아폴로 8호가 우주에서 찍어 전송한 지구 사진, 이 두 사건은 현대 환경운동의 탄생을 촉진한 산파요 아이콘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침묵의 봄> 50주년을 맞은 봄날, 환경 가치를 내세운 정당이 정식으로 출마한 총선이 치러졌다. 녹색당이 얻은 득표율은 0.48%, 지지자 10만3,000명. 우리의 환경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결과였다. 탈핵, 탈토건, 농업, 생명, 평화, 인권 등 하나같이 절박하고 중요한 사안들인데 결국 기존 정당체제의 철옹성을 넘지 못했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에서 환경과 녹색가치를 주류 의제로 만들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근본에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극단적으로 상품화된 사회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인지적으로 뒷받침하는 교육제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가치들이 다 그렇지만 인간의 천성에 의해 자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는 없다. 어떤 가치가 규범으로 수용되려면 어릴 적부터 가르쳐야 하고 사회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생명과 자연은 돈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특별한 가치라는 점을 강조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한 글자씩 배워 문자를 깨치듯, 환경가치라는 문자, 즉 '환경 문해'를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아직도 경제 성장률이 종교처럼 숭배되고, 정부가 앞장서서 전국의 하천을 파헤치면서 그것을 녹색성장이라고 우기는 나라다.
<침묵의 봄>은 봄이 왔지만 더 이상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을 섬뜩하게 그렸다. 먼 나라,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이 땅의 철새 도래지에서 새떼들의 합창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침묵의 봄>은 '가지 않은 길'이라는 장으로 끝난다. 카슨은 말한다. "우리는 지금 두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에 등장하는 갈림길과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과가 마찬가지이지는 않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침묵의 봄>이 나온 후 미국의 대법관 윌리엄 더글러스는 인류의 독살을 막으려면 환경 권리장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한 권리장전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50년 전 소란한 여름을 반환경 유해산업이 주도했다면, 21세기엔 시민들이 환경 문해를 요구하는 소란한 여름을 주도해야 한다. 그게 침묵의 봄을 막고, 어둠의 개발 카르텔을 깨는 유일한 길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일보. 2012.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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