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주] 위기의 야권에 지금 필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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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5-18 12:56 조회24,1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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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 알게 모르게 대선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미 15일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선출하고 질서 있게 새로운 국면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야권은 여전히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다. 민주통합당도 6월 초 전당대회를 거치며 대선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겠지만 야권 전체로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라는 의제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최근 민주통합당 내에서 안철수와의 ‘공동정부론’으로 상황을 돌파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현상을 뒷받침하고 있는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야권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통합진보당이 현재의 구렁텅이에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면 ‘안철수 변수’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층 연합이 야권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4·11 총선의 실패가 뼈아프지만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낮은 것은 아니다. 총선 득표수에서 여야는 팽팽한 균형을 유지했고, 여권 내에서는 새로운 후보가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만만치 않은 고비로 남아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진보정치세력의 이미지가 악화되었지만 경제사회 영역이나 남북관계 등에서 진보적 방향으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유권자가 여전히 다수이다. 문제는 야권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수권세력으로서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있다.
이번 총선에서의 실패도 야권이 국민들에게 수권세력으로 신뢰를 받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문제는 2008년 이후 계속 존재했던 것이다. 반MB정서는 강화되어갔지만 야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시선은 항상 정치세력보다는 대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은 인물에게 쏠리게 되었고 이는 다시 야당들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인물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모르핀과 같은 것으로 근본적인 처방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야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매우 불안정하게 나타나는 것이 이러한 한계를 잘 보여주었다. 현재 근본적인 처방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정치세력의 혁신이고 이는 정당혁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문제로 지적되는 리더십을 강화하고 낮아진 대선승리의 가능성을 다시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다. 현재 시급한 혁신 과제는 세 가지이다.
첫째, 말을 바로 세우는 것(立言)이다. 현재 야권은 원칙을 견지한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편의적으로 말을 선택하고 있다. 총선 때 한·미 FTA 문제를 둘러싼 혼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일구이언적 행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자기혁신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자기원칙을 세우고 이에 대해 국민들의 판단을 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둘째, 인적 쇄신이다. 2007년과 2008년의 양대선거에서 실패한 세력들이 나서 새시대를 열겠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총선에서 야권의 인적 쇄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총선 이후 정비과정에서는 더 큰 실망감을 주고 있다. 새 지도부는 당내는 물론이고 당 밖에서 새로운 세력을 발굴해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력은 일단 백의종군 자세로 대선에 임해야 한다.
셋째, 핵심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임기 5년 동안 국회에서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무분별하게 나열하는 것은 국민들의 불신만을 초래할 것이다. 집권 5년 동안 역점을 둘 핵심과제를 명확하게 제기하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국민들이 선거에서 보여주는 선택은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냉정하다. 주권재민의 원칙이 외면당하기 일쑤인 정치현실에서 사실상 유일한 주권행사 기회를 정말 신중하게 하는 것이다. 요행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하고 행동으로 신뢰를 얻어야 새로운 변화의 힘을 만들 수 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경향신문. 2012.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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