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인권을 둘러싼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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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2-23 13:47 조회23,1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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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시대엔 인권이 곧 정의였다. 독재자들조차 실제로 탄압을 하면서도 인권 자체를 반대한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인권에는 신성불가침의 도덕적 후광이 무지개처럼 걸려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역설적으로 인권에 시비를 거는 경우가 늘어났다. 학생인권과 교권의 대립, 학교폭력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설왕설래를 보라. 학생인권을 반대하는 이들이 과거엔 인권을 옹호하다 최근 들어 갑자기 생각을 바꾼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오늘날 인권은 절대적 지위에서 논쟁적 지위로 자리바꿈을 했다. 이 논쟁에는 두 가지 관점이 섞여 있다. 우선 인권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오류가 있다. 계몽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인간 존재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가치관의 문제가 깔려 있다. 토론과 설득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나씩 짚어보자.
첫번째, '기본권만이 인권이고 요즘 말하는 인권은 사치다.' 인권의 범위를 좁게 보는 것이다. 기본권이란 인간의 본질적 자유를 가리킨다. 하지만 현대 인권은 기본권의 범위를 계속 넓히며 발전해 왔다. 개인의 자유뿐 아니라 선택권, 의식주를 포함한 최저한의 생활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 문화생활을 누릴 자유 등이 인권에 포함된다. 모든 인권은 한 덩어리로 봐야 하고 서로 나눌 수 없다.
두번째, '인권은 이기적인 자기주장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오해다. 내가 어떤 권리를 요구하려면 그것을 충족시켜 줄 의무가 있는 상대방이 존재해야 한다.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홀로 산다면 권리를 요구할 수 없다. 인권은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전제로 한다.
세번째, '학생인권과 교권은 대립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을 교권으로 이해한다면 그런 교권은 제한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사의 정당한 수업진행을 방해하면서 자기 권리만 주장한다면 그런 행동은 제지될 수 있다. 하지만 학생인권과 교권을 제로섬 관계로 봐선 안 된다. 인권은 상호이해와 상호존중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네번째, '인권은 온정주의다.' 과연 그럴까? 명백한 잘못을 무조건 용서해 주자는 게 인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잘못이 어째서 발생했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 문제학생의 뒤에는 흔히 문제부모가 있고 그 뒤에는 문제사회가 있기 마련이다. 설령 벌을 주더라도 교화와 치료와 재사회화를 목표로 해야 하고, 그 과정과 절차를 잘 지켜야 한다. 인권은 무조건 온정주의가 아니라 개명된 규율과 인도적인 처벌을 옹호한다.
다섯번째, '인권은 무질서, 방종, 폭력을 조장한다.' 노파심과 논리의 비약이다. 인권을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할 때 이런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권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책임을 강조한다. 인권이 학교폭력과 임신을 부추긴다고? 부당한 낙인과 차별을 가하지 말자는 것과, 방종과 일탈을 찬양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여섯번째, '인권은 좌파의 정치공세다.' 이거야말로 정치공세다. 보편적 국제기준에 맞춰 선진화하자는 말이 어째서 좌파의 정치공세인가? 예를 들어보자. "정치지도자들은 동성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자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월 말 에티오피아에서 한 연설이다. 그러면 반기문이 세계 좌파의 정치공세를 펴고 있는가.
일곱번째, '학생 인권을 존중하면 옳은 교육을 망친다.'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면 그의 선택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설령 교육자가 보기에 잘못 됐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선택에 대해선 용인해줘야 한다.
인권을 보호하자는 말은 결국 인간화된 사회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지나친 권리주장이 사회공동체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애초에 학생인권이 등장해야만 했던 비정상적이고 가혹한 교육현장을 먼저 성찰하는 게 정상적인 순서다. 이제 인권논쟁도 권리와 책임을 균형 있게 구사하는 민주시민의 양성을 둘러싼 건설적인 논의로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일보. 2012.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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