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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다자협력의 동력 돼야 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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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0-28 15:44 조회24,8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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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이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재관여 메시지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라고 발언해 큰 물의를 빚었습니다. 청와대는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대통령의 재관여 발언이 통역 오류로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진화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정권 들어서 불편해진 대중 관계를 고려하면 수수방관해선 안 될 텐데 청와대가 이 기사에 반론 요청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미국 정부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미국 국방부를 방문한 한국 대통령, 그리고 전세계에 배치된 미군 사령부의 상황보고를 받는 탱크룸에서 미 합참의장의 보고를 받은 최초의 외국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디트로이트 방문에도 동행했습니다. 우리 국력이 그만큼 커지고 한-미 관계가 그만큼 돈독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엔 뭔가 찜찜합니다. ‘중국위협론’ 발언 이후 미국의 탱크룸에 선 대통령의 모습이 미국의 아시아 재관여 정책의 첨병처럼 보일까 걱정되는 까닭입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각축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은 ‘아직 강국은 아니’라며 겉으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면서도, 군비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영토 분쟁에선 전에 없이 힘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 의도를 의심하며, 이제부턴 아시아의 ‘상주국가’로서 단순히 군사외교적 영향력 행사 이상의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0일 이런 미국의 이런 입장을 ‘태평양의 세기’란 글로 정리해 <포린 폴리시>에 기고했습니다. 그 이틀 뒤 하와이대 동서문제연구소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레이먼드 버가트 전 베트남 주재 미국대사는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쏟았던 역량의 상당 부분을 동아시아로 돌릴 것이라며 중국도 미국이 해공군기지를 괌으로 이전한 것의 의미를 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의 처신은 결코 간단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무역상대국이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그런데 많은 중국인들은 돈은 중국에서 벌면서 중국위협론을 들먹이며 한-미 동맹 강화를 외치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최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발표한 ‘2011 한·중 국민인식 조사’에서 한국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호감도가 해를 거듭할수록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는 것(2006년 73%에서 2011년 53%)은 이런 현실에 대한 반영일 것입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중국인들의 대한국 인식에 기름을 붓는 꼴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경쟁한다고 해서 우리가 꼭 어느 한편에 설 이유는 없습니다. 하와이 퍼시픽포럼의 칼 베이커 소장은 이와 관련해 아태지역의 다자틀에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하고 있는 역할을 주목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아세안은 주변 강대국들과 크게 이해 상충하지 않는 까닭에 다자간 협력을 이끌어내는 구실을 잘하고, 미국과 중국도 아세안을 통해서 다자협력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하와이대 동서문제연구소의 캉 우 연구원은 4강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동북아에선 한국이 아세안과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합니다. “동북아는 강대국이 집중된 독특한 지역이다. 그러나 안보 대화는 6자회담이 고작이다. 남한은 여기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과는 경제관계도 긴밀하고 일본은 오랜 우방이다. 북한은 동족이고 미국과는 동맹 관계다. 이런 관계를 잘 활용한다면 남한은 이 지역의 새로운 안보환경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리에 대한 기대는 역동적인 현대사를 발전시켜온 우리 역량에 대한 평가이자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외교도 미국의 치마폭에서 벗어나 좀더 자신있게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1.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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