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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이주호 교과부 장관께 - 학생인권조례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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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2-01 11:39 조회21,9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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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관님, 2세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교육은 개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방향 짓는 것이기에 국민들의 관심도 많고 논란도 큰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최고 책임자의 고민이 어떠할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장관께 글을 띄우는 까닭은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공포한 학생인권조례 때문입니다. 영어의 몸에서 풀려난 곽노현 교육감이 조례를 공포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즉각 무효소송으로 대응했더군요. 조례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지 못하고 대법원으로 넘긴 것은 이유야 어떻든 교육계로선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부 이견을 합리적으로 풀어낼 능력이 없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셈이니까요.

 

조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여전하니 교과부의 고민도 깊었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미 경기도와 광주광역시에서 비슷한 내용의 조례가 제정돼 시행되고 있는데 왜 유독 서울시 것만 문제삼아 재의에 부쳤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게 사실입니다. 교과부는 서울 조례가 학교규칙을 일률적으로 규제해 학교의 자율성을 해칠 우려가 있고, 집회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학습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잘못된 성인식을 조장할 수 있고, 휴대폰 소지를 원칙적으로 허용해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회의 자유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경기도와 광주 인권조례에도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유독 서울 조례만 문제삼겠다면 집회의 자유 부분만 이유로 내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서울 조례는 “학습권과 안전을 위해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해 학습권 침해 가능성을 차단했습니다. 교과부 대응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까닭입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몰고올 학교 현장의 변화에 대한 교사들의 걱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폭력과 ‘교실붕괴’ 현상이 심각하고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학생이나 학부모들도 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학교 안팎의 인권의식이 제대로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도적으로 인권조례를 정착시켜야 할 교사들이 난감하고 막막한 느낌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특히나 질풍노도와 같은 반항기의 청소년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해야 할 중등 교사들의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교과부가 조례를 막고 나설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조례 제정은 더 필요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육기본법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민주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을 교육의 주요 목적으로 명기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민주시민 교육의 장이 되려면 스스로 민주적 조직이 돼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것과 큰 차이가 있음을 장관께서도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인권조례는 바로 이런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습니다. 학교 안에서 남과 나의 인권을 존중하고, 차이를 이유로 차별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참여해 결정하게 하는 훈련을 통해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교육 과정 자체가 학교를 민주화시키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길이기에 우리는 가야만 합니다.

 

‘민주시민 양성과 민주국가 발전’이 허울뿐인 교육목표가 아니라면, 인권조례 제정은 장려하면 했지, 가로막을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 최고 수장을 배출한 유엔에서조차 서울 조례를 높이 평가하고 환영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대승적 결단을 내려 조례에 대한 무효소송과 가처분신청을 취하하고, 대신 그것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정권의 비민주성을 자백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교사와 학생들에게 인권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교사의 잡무와 1인당 학생 수를 줄여줘 그들이 학생들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게 지원하며, 학생지도에 도움을 줄 보조교사를 투입하는 등 교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장관님의 용단을 기다리겠습니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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