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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낙천·낙선 운동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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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2-29 15:47 조회23,4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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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정당에서 1차 공천자 명단을 발표하고, 진보 정당은 연대 협상을 통해 실익을 저울질하며, 녹색당도 곧 창당을 앞두고 있다. 총선의 전선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은 역시 어느 당이 승자가 되느냐다. 다수당은 금년 후반의 대선에서의 승리까지 노리며 2013년 이후 새 체제의 주역이 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3년 이후의 정치 판도를 새 체제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현 정부에 대한 여야의 평가 어느 것에 따르더라도 긍정적 결론은 없으므로, 내년에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새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금 한창 진행중인 공천 심사는 다수당으로서 새 체제를 이끌어가기 위한 첫 단계의 작업이다.

 

그런데 양당의 공천 과정은 초반부터 순조롭지 못하다. 공천에 감동이 없다느니, 결국 기득권 세력의 나눠먹기라느니 하는 비판이 일고 있다. 내부에서는 정체성 논란으로 혼선을 빚기도 한다. 단독 공천에 반발하는가 하면, 일부 경선 지역에선 벌써 선거인단 모집에 잡음이 생겼다. 이런 양상은 어느 쪽에든 기대를 잔뜩 걸고 있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볼 땐 몹시 안타깝고 심히 불만스럽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정도의 현상은 이미 예상한 것일 수도 있다. 게리맨더링이란 조소에도 불구하고 300개를 채워 자리마다 감동의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이미 압승을 예약해 놓는 것이나 다름없을 터이다. 정당이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더라면 애당초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구해야 할 최선책은, 감동을 만들어 내기보다 원칙에 충실하는 길이다. 각 정당의 원칙은 이미 스스로 정해 놓았다. 여기서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그 원칙의 밑바탕이 되는 원칙이다. 그 원칙의 원칙은 이미 12년 전에 시민단체들에 의해 제시된 바 있다.

 

새삼스럽게 낙천ㆍ낙선운동을 들먹이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운동이 보여 주고 국민이 호응하고 세계가 주목한 것은 일회적인 구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수 언론은 낙천ㆍ낙선운동을 폄훼한다. 그런 시각은 운동의 내용이나 취지는 외면하고 시민단체에 대한 반감만 표출한 비합리적 태도로, 오늘의 부정적 정치 현실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기까지 하였다. 왜냐하면 낙천ㆍ낙선운동을 거부한 태도는 원칙을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원칙이란 자격 없는 사람은 아예 후보군에서 배제한다는 것이다. 무자격의 기준에는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과거의 경험과 당면한 사정에 미래의 과제를 종합하여 정하면 된다. 기준이 마련되었으면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 첫 번째 원칙을 실천하는 데에는 구체적 억울함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과감해야 한다.

 

낙천ㆍ낙선운동을 비난하는 논리의 하나는 네거티브 운동이란 것이었다. 이러저러한 좋은 인물을 뽑자고 해야지 왜 후보를 헐뜯느냐는 주장이었는데, 그야말로 비논리적 단견이다. 적합한 인물을 내세워 뽑자는 호소는 선거운동이다. 낙천ㆍ낙선운동은 무자격자를 사전에 골라내자는 국민적 정치운동이었다. 일정한 자격 기준을 통과한 복수의 후보들 중에서는 누가 당선돼도 상관없다. 그것이 민주주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지금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는 정당의 공천 작업이 시끄러운 것은 그 첫 번째 원칙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저 자기 당의 고유 원칙과 그 원칙의 바탕이 되는 일반 원칙을 다시 살펴보면 좋겠다.

 

패배를 받아들일 줄 앎으로써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공천의 의무를 공공성이라 한다면, 당 내부에서부터 탈락자가 겸허히 결과를 수용할 수 있도록 미리 조정하는 공천을 완수해야 한다. 공천 과정을 보면 총선과 대선의 향방도 가늠할 수 있다. 벌써 12년 전을 잊었다면, 조만간 시민의 유권자 운동이 다시 폭발하고 말 것이다.

 

차병직 변호사
(한국일보. 201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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