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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보시라이 사태와 중국 권력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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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3-27 11:23 조회24,8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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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권력전환기에 정치적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중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번 칼럼에서 2월6일 충칭시 전 공안국장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으로 일시 피신한 사건이 중국의 권력구도와 최근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상논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중국 내의 상황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3월15일 중국 당국은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를 면직한다고 발표했다. 보시라이는 발표 직전까지도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그는 3월9일 용인(用人)에서 잘못을 범했지만 충칭시의 기본정책은 올바르고 계속 견지되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중공) 지도부가 전격적으로 그를 파면했다. 중공 정치국원의 인사조치가 이처럼 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매우 예외적이다.


게다가 하루 전인 3월14일 원자바오 총리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충칭시 지도부가 왕리쥔 사건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인사변동을 암시하는 동시에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은 보시라이의 정치노선상의 잘못을 추궁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충칭모델이 사실상 부정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인사조치가 상황을 안정시키기보다는 본격적인 권력투쟁을 촉발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파룬궁과 관련이 있는 대기원이라는 언론매체는 내란설까지 언급하며 중공 내 권력투쟁과 관련한 동향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가 지도부 내의 공개적인 권력갈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인사조치가 전격적이기는 하지만 최고지도부의 합의에 의한 결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시라이를 대신해 충칭시 당서기에 임명된 장더장이 보시라이의 후원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장쩌민 세력과 가깝다는 점도 이번 사태가 후진타오 세력과 장쩌민 세력의 갈등을 격화시킬 가능성을 낮게 한다.


이번 결정은 최근 격화되던 ‘좌우논쟁’에서 일단 극좌세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데 중공 지도부가 컨센서스를 형성한 결과로 보인다. 충칭모델은 최근 개혁·개방의 문제점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실험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개혁·개방노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심지어는 마오쩌둥의 문혁노선을 지지하는 극좌세력의 상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중공 지도부는 올 가을 예정된 18차 전국대표대회의 안정적인 개최에 장애가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보시라이의 파면으로 ‘좌우논쟁’이 개혁파 혹은 우파의 승리로 마무리됐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현재 중공 지도부가 가장 신경을 쓰는 문제는 사상논쟁 등으로 권력전환기에 정치적 통제력이 약화되고 사회불안이 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공 통치에 도전하는 우파들에게도 동일하게 경우에 따라서 더 엄격하게 대응할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충칭모델이나 극좌세력이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객관적인 요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자신도 2003년 이후 조화사회론 등을 앞세워 빈부격차와 부패 등 개혁·개방노선이 초래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만 이들은 이러한 노력이 개혁·개방노선과 정치적 안정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를 만족시키며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개혁·개방노선의 견지와 이 노선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다시 보여주었다.


요약하지만 중공 지도부들은 정치안정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을 과시했지만 서민들의 요구에는 답을 준 것이 아니다. 2012년 하반기 중국, 미국, 한국의 순으로 새로운 권력이 들어설 예정인데 현재로서는 권력교체가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교체기에 정치적 스캔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새로운 출발을 여는 ‘사건’은 출현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경향신문. 201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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