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안철수 현상’과 정당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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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9-29 13:28 조회22,6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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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정당 공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대다수의 우리 시민들은 이 시대를 힘들고 외롭고 암담하게 살고 있으나 그들을 제대로 대표하고 대변해주는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시민들이 그 공백을 채워줄 ‘초인’을 정당체제 바깥에서 찾는 것이다. 보수파 시민들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한나라당이 보수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비교적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도와 진보 경향 시민들이 믿고 따를 만한 유력 정당이 없다는 점이다. 정당 공백 현상이 특히 중도나 진보 영역에서 심각하다는 것이다. 안철수, 박원순, 문재인 등의 비정치인들이 이 공백 지대로 빨려들 듯 들어오게 되는 까닭이다.
비정치인들이 정치적 대표가 되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을 빨아들인 정당 공백 상태가 지속되는 한 민주적 ‘책임정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표-책임의 원리에 기초하여 운영된다. 시민의 대표자 혹은 대표세력은 선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묻게 돼있다. 직무를 잘 수행하면 재선 혹은 재집권하고 그렇지 못하면 낙선 혹은 실권한다. 그러므로 임기 중에도 늘 민의를 살피며 충실히 일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시장 개인에 대해서는 (무한 연임제가 아닌 한) 책임성을 따지기가 어렵다. 개인은 그만두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소속 정당에 책임을 묻는 일이다. 이는 전임 대통령이나 시장에 대한 평가가 같은 당 소속의 후임 후보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소위 ‘회고적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같은 정당을 통한 책임성의 확보는 그 정당의 정책이나 이념적 정체성이 분명한 경우에야 가능한 일이다. 특정 범위의 시민들을 대표하여 그들이 선호하는 특정 이념과 가치, 그리고 정책 기조로 승부하는 정당은 자당의 후보가 대통령 또는 시장으로 선출된 경우 그에 못지않은 책임의식을 갖고 그의 직무가 정당의 이념 및 기조에 합치하는 가운데 성공적으로 수행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개입하고, 압박하고, 때론 견제한다. 대통령이나 시장은 임기 후에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정당은 그 이념과 정책 기조를 유지 혹은 발전시켜가며 무한히 계속되는 선거정치에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당의 ‘족보’가 중요한 까닭에 책임정치가 시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념이나 정책기조가 불분명하여 누구를 대표하는지가 불확실한 정당의 경우는 다르다. 그 경우는, 예컨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지위 또는 복지 향상을 위한 대통령이나 시장의 수행능력에 문제가 있을지라도 정당이 나서서 그것을 바로잡아주기는 어렵다. 옳고 그름이나 적당함과 과함 (또는 부족함) 등에 대한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이나 시장은 소속 정당에 의해 구속되지 않고, 정당 역시 시민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문제가 심각하면 해당 인물이 그만두면 된다. 정당은 필요하면 이름을 바꾸든지 지도자를 바꾸든지 해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책임정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당 공백 상태는 이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정당들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정치공간의 성격을 가리킨다. 거기선 대표되지 않는 시민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한국의 중도 및 진보 영역이 속해있는, 그리고 안철수, 박원순, 문재인 등을 부르고 있는 바로 그 공간이다. 필경 그들은 당선 전후에 민주당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물론 서울시장직도 의회, 관료, 이익집단 등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상당 수준의 정당권력을 필요로 하는 정치적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정당을 매개로 하는 책임정치가 담보될 리는 없다. 민주당의 이념 및 정책적 정체성은 아직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도진보 성향의 시민들은 언제나처럼 그저 초인의 의지와 능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머물게 된다.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지 아니한가? 좀 더 체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젠 새 인물의 발굴이 아니라 정체성 분명한 중도진보정당의 확립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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