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손정의와 안철수의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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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09 11:57 조회21,5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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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정보기술(IT) 성공신화의 주인공 두 사람이 올해 각각 거액을 기부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손정의는 1500억원을 내놓았고, 안철수는 1500억원 상당의 보유주식을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무엇보다 IT산업을 통해서 유명해졌고, 나이도 비슷하고, 혼자 힘으로 부를 쌓아올렸으며, 미국의 유명 대학도 다녔다. 이번 안철수의 기부로 유사점이 한 가지 더 늘었다.
그런데 기부 목적를 살펴보면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다. 안철수는 안철수연구소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기부금이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기부자들로부터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손정의도 기부금의 일부를 지진과 해일의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거대기업의 총수로서는 엉뚱하게도 자연에너지재단의 설립을 제안하고, 여기에도 150억원가량을 기부했다.
손정의의 행보를 관찰하면 현재 그의 관심은 온통 태양광발전을 비롯한 자연에너지 확대와 원자력발전의 폐기에 쏠려 있는 것 같다. 그는 동일본을 태양광발전 벨트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곳의 지자체들과 협약을 맺는 일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일본 전체를 연결하는 슈퍼 전력망 건설뿐만 아니라 한·중·일과 몽골을 연결하는 동아시아 전력망, 아시아·인도까지 포함하는 전력망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손정의는 원자력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사능 계측기를 가지고 후쿠시마 지방에서 방사능 수치를 직접 확인하면서 원자력발전은 안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원전이 대단히 위험하고, 사고 발생 시 막대한 보상금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원가가 높을 뿐만 아니라 사고로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면 자기 회사의 휴대전화도 먹통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원자력에는 미래를 열어줄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풍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2010년 이미 미국에서 원전 생산 전기보다 값이 싸졌고, 태양광발전으로 만드는 전기의 가격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그는 바로 여기에서 희망찬 미래를 발견했다. 그리고 자연에너지의 확대와 원자력의 폐기를 통해서 지진과 해일로 절망에 빠진 후쿠시마 지역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그들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것이다.
손정의의 자연에너지 활동은 ‘정치적 상업행위’라는 비판을 받는다. 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와 슈퍼 전력망 건설 제안에 대해서는 태양광이냐 원전이냐 둘 중 하나여서는 안되고 대규모·독점·집중 배제냐 소규모·분산·자립·공동이냐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비판에 타당한 면이 있다고 해도, 분명한 점은 그가 좀 더 깊고 넓게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정의가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기부한다고 했을 때, 손정의의 부모 세대인 재일동포 2세들은 ‘보험’이라고 말했다 한다.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조선인’이 처참하게 살육당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이 보기에 그 돈은 ‘재일조선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보험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일동포 3세인 손정의의 ‘보험’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보험’이 아니다. 그의 기부를 보험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다음 세대의 희망찬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고교 졸업생의 82%가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은 교육과잉 국가다. 안철수의 기부금도 아마 장학재단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교육과잉에 기여할 것이다. 교육도 ‘보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아이들의 생존에 도움을 주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과잉이 아이들의 희망찬 미래를 보장해주는 진정한 ‘보험’이 될 수 있을까? 기부 결정 전에 용도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경향신문. 201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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