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숙] 김장김치와 연탄배달 말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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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09 12:07 조회21,76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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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기업마다 ‘사회공헌’에 더욱 분주하다. ‘사랑의 김장김치’를 담가주고, ‘희망의 연탄’도 나른다. 회사 로고가 찍힌 앞치마를 두른 임원들이 버무린 김장배추를 들고 나란히 찍은 사진도, 산동네 비탈길에서 연탄을 나르며 웃는 검댕 얼굴도 모델만 바꾼 판박이 사진 같아 지루하고 민망하다.
2010년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은 전년도보다 8.4%나 늘었고, 매출액 대비로 보면 미국과 일본보다 갑절 이상이라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고무적 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보여주기’와 ‘반짝효과’를 기대하는 관성은 여전해 보인다. ‘착한 사진’ 몇 장으로 사회공헌의 진정성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아직 눈치채지 못한 걸까.
한두해 단위로 사업을 바꿔가며 히트상품의 대박을 기대하는 조급한 심리는 사회공헌이 경계해야 할 제일의 유혹이다. 수년간의 사회공헌사업에도 계속 공급자 중심의 ‘선심 공헌’을 맴돌고 있다면 경영진이나 담당자 둘 중 하나는 무척 게으르거나 무지하다는 증거다.
이윤과 고용이 동반상승하도록 경영을 잘하는 것 자체가 사회공헌이라거나 기업은 자선단체가 아니라는 사회공헌 회의론은 잠잠해진 지 오래다. 수많은 기업인 포럼에서 사회공헌의 성공 사례는 필수 강의로 등장했고, 사회공헌 컨설팅회사를 찾는 기업은 늘고 있다. 한 기업 연구원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88%가 ‘사회공헌을 잘하는 기업 제품은 조금 비싸도 구매하겠다’고 답했고, 취업준비생의 73%는 ‘연봉이 좀 낮아도 사회공헌을 잘하는 기업에 취직하겠다’고 했다.
사회공헌을 잘하는 기업에 대한 호의와 지지는 나눔과 공익의 얼굴을 가진 기업에 대한 요청이다. 사람들의 달라진 기업관은 기업에 달라진 사회공헌 의식을 요구한다. 전시적·단기적 사회공헌은 곧 바닥을 드러내고, 오래 서 있지 못한다. 사람들은 당장 반짝이는 거품 성과는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어떻게 ‘잘’할 것인지, ‘무엇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 것인지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
“기업은 사회의 긍정적 힘이 되어야 한다”는 구글 창업자 브린과 페이지의 철학은 기업의 사회적 존재감이 어디에 있는지 환기시켜준다. 그들은 “기업의 물적·인적 자원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사용돼야 한다”며 회사 주식과 수익의 1%, 직원 근무시간의 1%를 ‘구글 닷 오르그’(구글의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돈을 많은 비영리단체와 연구소, 개발도상국의 혁신적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 과감히 투자한다. 발상이 정말 다르다. 차별화된 사회공헌은 사회에 긍정적 힘이 되는 기업이라는 구글의 혁신적 기업관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얼마 전 발표한 안철수연구소의 사회공헌도 스마트하다.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한다”는 선언에는 사회 안에서 기업이 맡아야 할 책임을 생각하는 진지함이 있다. 경영진의 의지, 기업 특성의 극대화, 직원 참여와 내부 인프라 구축 등 전략적 사회공헌의 필요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사회공헌 아카데미’ 신설과 기부문화 인터넷 플랫폼 ‘소셜 사이트 가이드’를 통한 전국민적 나눔문화의 확산 계획은 영리기업과 비영리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이 가능한, 국내 사회공헌의 의미있는 이정표로 기대된다.
사회공헌은 기업의 존재방식을 정확히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사회공헌의 면면을 살펴보면 해당 기업 경영진의 기업철학과 가치관, 기업문화와 직원들의 자부심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사회공헌에 진정성과 창의적 발상이 엿보이는 구글과 안철수연구소가 기술과 경영상의 성공 기업만이 아니라, 세상의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데 성공한 기업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고대한다.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한겨레. 201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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