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택] 새해에 생각하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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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1-11 14:46 조회21,3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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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새 해가 밝았다.
지난해가 저무는 12월 17일에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서거로 한반도는 비상사태에 돌입했고 동북아 지역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북녘의 최고 권력자의 급서는 급변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사회주의 국가에서 3대 세습이란 유래 없는 방식이긴 해도 후계 구도가 안정적으로 갖춰지는 모습이 신년으로 들어와서 가시화 되고 있다.
김정일의 사망 소식에 나는 이명박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걱정스러웠다. 18년 전 김일성 주석이 타계했을 때의 일이 떠올라서였다. 1994년 여름이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 정상이 만나기로 한 역사적인 날을 겨우 열흘 남긴 시점에서 급서했던 것이다. 남측은 정부 차원의 조문이 응당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정상회담을 하기로 쌍방이 약속했으니 만나지 못하고 아쉽게 타계한 한 쪽에 대해 조문 예절을 갖추는 것은 상식 아닌가. 하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빗나갔다. 매스컴을 총동원해서 ‘반김’·‘반북’의 보도를 쏟아내서 국민적 증오심과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때문에 모처럼 기대했던 민족적인 화해국면이 위기국면으로 급전하고 말았다.
이번의 경우 이명박 정부는 북의 주민들을 위로하는 선에서 조의를 표했고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여사의 조문행을 허용했다. 비록 인색하고 옹졸하긴 하지만 전에 취했던 대북 자세와 비교해 보면 진전되고 합리적인 모양새다. 신문이나 방송도 과거 김주석의 사망 때와는 보도의 태도나 방향이 크게 달랐다. “김정일 사망이 우리에게 ‘출구’를 제공했다”는 발언이 정부 고위소식통에서 나왔다 한다. 왜 이처럼 이번에는 전번과 달라진 형국이 우리 앞에 그려지고 있을까?
현 이명박 정부는 출범할 적에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를 내세웠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을 당파적 입장에서 잃어버린 기간으로 치부한 셈이다. ‘국민의 정부’ 5년과 ‘참여정부’ 5년을 무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나는 상투적인 선거구호 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역사의 시간표에서 민주화의 진행을 되돌려 놓고 남북의 화해 협력의 발전을 가로막은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6·15 선언, 노무현 정부에서 10·4 선언을 이끌어냈었다. 남북의 대결 국면을 지양하여 통일로 가는 이정표가 되는 획기적 내용이었다. 그것은 남북의 정상이 만나서 공동 선언한 기본 합의서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수용하기를 끝끝내 거부하여, 남북 관계의 어렵게 일궈낸 틀을 깨버렸다. ‘잃어버린 10년’의 관점에서 보면 되찾은 성과의 하나로 기록됨직 하다.
남북 간의 화해 협력의 틀을 깬 결과로 한반도 상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가.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더니 천안함 사태가 터지고 연평도 포격 사태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드디어 남북 관계를 중단하는 5·24 조처를 전쟁기념관에서 발표했다. 그리하여 대통령이 지하 벙커에서 비상시 복장을 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장면이 화면에 비쳐지기도 했다. 황해상에는 미 해군의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합동군사훈련을 벌여서 중국을 바짝 긴장시키기도 했다. 남한은 중국과 불편한 관계가 된 반면 북조선은 중국의 보호막 안으로 들어간 꼴이 되었다. 한때는 동아시아 지역에 미-한에 일본이 파트너가 되고, 중-조에 러시아가 파트너가 되는 신냉전 구도가 재현되는가 싶었다. 실상은 그렇게 가지 않았다. 남북의 교역·교류는 현저히 위축되었지만 그럼에도 중국과 한국, 중국과 일본, 중국과 미국의 경제 관계는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증대한 것이다. 상호 의존의 관계가 발전하여 이젠 각기 서로 배제하기 어렵게 되었다. 한반도 상공에 전운이 감돌고 동아시아 지역이 다시 얼어붙는 상황을 그 어느 쪽도 바라지 않고 있다. 이젠 ‘잃어버린 10년’ 되찾기의 성과를 스스로 부정하고 출구 전략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2012년은 선거의 해이다. 4월에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12월에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다. 총선과 대선으로 정치 지형을 결정하는 ‘정치의 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데 나 자신 이명박 시대를 살아오면서 절감한 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이 땅의 보수 세력은 국정을 담당할 자질도 능력도 부족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점이다. 21 세기로 진입해서 10년을 경과하는 동안에 세계는 급속히 변했다. 정치의 주체인 인간 개체들의 의식도 현격히 변했다. 미국 주도의 시대로부터 동아시아가 부상하는 시대를 맞아 친미반북의 수구적 논리를 가지고 구태의연하게 대응하기는 어렵다. ‘안철수 현상’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정치의식을 구시대의 권위주의적 패턴으로 담아내기 또한 어렵다. 시대의 변화에 슬기롭고도 창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요망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반도에서 평화체제의 구축이 긴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라는 점이다. 6·15 선언에서 10·4 선언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남과 북은 화해 협력의 관계가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 기대는 정권이 한 번 바뀌자 무산되고 일촉즉발의 위기 가까이까지 갔다. 역사는 역주행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모든 책임을 남측의 당국자에게로 돌릴 것만도 아니다. 북측이 초래한 측면도 크다. 문제는 한반도 상에 역사를 역주행시킬 기제가 상존해 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는 정전 협정에 의한 휴전상태이다.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이므로 진동도 잦고 소규모의 폭발은 종종 일어나기 마련이다. 정전협정으로 유지되는 분단체제는 태생적으로 불안정한 구조이다. 남과 북이 하나로 되는 통일로 가기까지 시일을 요하지만 그 중간 과정으로서 남과 북이 국가연합을 이루는 방법론은 이미 6·15 선언에 제시되어 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일은 그 선결과제이다.
또 하나는 한반도의 문제는 남과 북이 함께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몫이라는 점이다. 그 중에도 남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6자 회담이 그렇듯 미·일·중·러가 관여되어 있으며, 한·미와 조·중은 상호 동맹관계이다. 이들 열강의 영향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한반도의 문제를 풀자면 이들과의 협조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미국도 중국도 자국의 입장에서, 자국의 이익과 직결해서 한반도를 생각하고 개입한다는 것이다. 저들을 탓할 일이 아니고 팔이 안으로 굽듯 자연스런 형세다. 북측은 핵을 개발하고 강성대국을 표방하여 대단히 공격적이고 과시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기실은 수세적이다. 위기에 놓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보호본능이다. 남과 북에서 문제해결의 주도권은 남이 쥐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바꾸기 위해 남측의 정부나 시민의 능동적이고 유연한 역할이 기대된다.
나는 이 글을 새해를 맞는 덕담으로 끝맺으려 한다. 금년 ‘정치의 해’는 오로지 국민적 선택에 달려있다. 지난 4년을 경험하면서 국민 대다수는 학습 효과가 컷을 것이다.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체제를 일궈내서 한반도는 동아시아 평화의 가교가 될 것이다.
임형택 성균관대 前 동아시아학술원장
(서남포럼. 201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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