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원전 안전을 경시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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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8-01 17:21 조회4,9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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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뉴스 칼럼 / 이필렬]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려라.” 원전업계 간담회에 동행한 관료들에게 대통령이 했다는 말이다. “탈원전 폭탄이 터져” ‘빈사상태’에 처한 원전업체를 위해 안전 같은 것은 과감하게 무시하라는 말로 들린다. 원전업체들 편에서 보면 어느정도 환영할 만한 발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라 전체를 생각하면 대단히 위험한 말이다. 업체들은 살아날지 모르지만, 나라에는 큰 재난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전의 안전을 별것 아닌 것처럼 대하다가 인류가 당한 참극이 두번 있었다. 구소련의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참사가 그것인데, 모두 관계자들이 안전을 중시하는 사고를 버리지 않았다면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체르노빌에서는 비상 디젤발전기를 보조하는 전력설비 테스트가 완수된 후에 원자로를 가동했다면, 테스트 도중 제어봉을 완전히 제거하지만 않았다면, 적어도 온 세계를 불안에 떨게 만든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후쿠시마에서도 비상 디젤발전기를 지하에서 1층으로만 옮겼어도 4기의 원자로가 폭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의 디젤발전기는 발전소에 전력공급이 끊기는 비상 상황이 닥쳤을 때 원자로의 냉각수 순환펌프에 전기를 공급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발전기가 순환펌프를 돌릴 수 있는 최대출력에 도달할 때까지 60초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이 시간 동안 다른 방식으로 전기가 공급되어야만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되는 것이다. 발전소 설계자들은 이 전기를 원자로가 멈춘 후에도 관성에 의해 수십 초 더 돌아가는 증기터빈을 이용해 만들려 했고, 발전소가 상업운전을 시작하기 전에 몇차례 테스트를 했다. 그러나 이 테스트들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안전이 검증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발전소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업운전에 들어갔고, 기술자들은 운전 중에 다시 테스트를 해서 안전 검증을 완료하려 했지만 결과는 대참사였다. 사실 이 테스트는 그 전에도 몇차례 실패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안전에 유의해야 했지만 기술자들은 테스트를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제어봉을 완전히 제거하고 테스트를 진행하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고, 그 결과 원자로 폭발이라는 재앙이 닥쳤다. 2021년에 기밀해제된 자료에 따르면 체르노빌에서는 1986년 대참사 전에 몇차례 심각한 사고가 일어났고, 모스크바에서는 1983년에 이미 체르노빌 발전소가 매우 위험한 발전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도 발전소를 계속 가동했으니 체르노빌 사고는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후쿠시마 사고도 발전소 운영자들과 정부 관료들의 안전을 중시하지 않는 태도가 불러온 참사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원전의 외부 영향에 대한 안전 수준이 현저히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일본의 전문가들이 아주 강한 해일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비상 디젤발전기를 지하실 같이 낮은 곳에 방치했던 것이다. 그 결과 2011년 3월 11일 대규모 쓰나미가 발생하자 디젤 발전기들이 모두 물에 잠기거나 쓸려나가 원자로의 핵연료가 냉각되지 못하고 녹아버리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체르노빌 사고의 복구비용이 900조원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2020년 국내총생산 1631조원의 절반을 크게 웃도는 액수다. 후쿠시마의 경우 복구비용은 250조원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일년 예산의 절반 가량 되는 돈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적은 돈을 위해 안전을 무시한 대가다. 안전 검증에 실패한 체르노빌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았을 경우 발생했을 손실은 최대 10조원 정도였을 것이다. 후쿠시마 발전소에서 디젤 발전기를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은 수백억원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작은 사고가 잦으면 언젠가 대형 사고가 온다. 하인리히 법칙이다. 안전 마인드도 마찬가지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또는 성가신 것처럼 보이는 안전을 자주 무시하면 언젠가 큰 재난이 닥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정(불량)식품 허용, 후쿠시마 방사능 위험 무시, 오염된 용산공원 개방, 원전안전 경시, 노동시간 제한 철폐 등 안전 경시 발언이 쌓여가고 있다.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이투뉴스 2022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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