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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새는 두 날개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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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8-22 12:20 조회21,2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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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장 야당들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야당 탄압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임 검찰총장이 지난 15일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구청장, 시의원 등이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기도 한 ‘왕재산 사건’의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처리를 지시한 것으로 보면 지나친 반응만은 아니다. 검찰이 이들 인사에게 뚜렷한 혐의가 없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검찰총수가 철저한 수사를 주문한 것이 앞으로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그러나 지난번 지방선거가 잘 보여준 것처럼 이제 북풍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정치적 의도가 앞선다면 의도와 상반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단호한 태도를 지지하는 동시에 무리하지 않을 것을 주문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이 발언에 대한 우려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종북좌익세력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법기관의 이념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는 정치개입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좌익(left wing)’은 우익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질서 내에서 존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균형을 위해서도 존재해야 하는 정치적 경향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좌익을 범죄로 간주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스스로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목적으로 강조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시터(Rossiter)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민주주의적 절차를 유보시켰던 현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꼬집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크다고 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민주주의 자체의 일시적 희생 따위야 정말 사소한 것이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좌익 앞에 ‘종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고 문제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종북이라는 표현은 처벌대상을 분명하게 지칭할 수 없으며 단지 좌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장치로 기능할 뿐이다. 사법기구의 수장이 법률적 표현이 아니라 종북이라는 정치적 표현을 사용한 것 자체가 문제이다. 물론 검찰이 법집행기구로서 현행법인 국가보안법에 의거해 반국가단체와 관련된 행위(조직, 가입, 고무찬양 등)를 조사하고 처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굳이 좌익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국가보안법에도 좌익을 처벌대상으로 규정하는 내용은 없다. 그런데 법률적 의미가 불분명한 종북과 좌익을 연결시켜 ‘종북좌익세력’이라는 조어를 해 좌익을 범죄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념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행위일 뿐이다.

최근 지하철에 부착되거나 방송되고 있는 국정원 홍보물에서 간첩 등과 함께 ‘좌익사범’에 대한 신고를 권고하는 것(포상금은 최대 3000만원)은 좌익이라는 표현이 부당하게 사용된 또 다른 사례이다. 한때 이러한 홍보물에서 좌익사범이라는 표현이 빠졌는데, 2008년 하반기부터 다시 등장했다고 한다. 여기서 좌익은 종북이 아니라 ‘사범’이라는 모호한 표현과 결합되면서 역시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대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사범’이란 사전적으로나 법률적으로 형벌 또는 처벌을 받을 만한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좌익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사범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 그렇지만 빈번했던 군사쿠데타가 보여주는 것처럼 헌정질서에 대한 위협이 좌만이 아니라 우로부터도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좌익‘사범’만이 아니라 우익‘사범’도 신고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로에서 가스통을 들고 설치는 행위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더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좌파, 좌익이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범죄적 집단으로 묘사되는 사례는 우리 현대사에서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이러한 악습이 우리 사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라는 외형에 맞지 않은 여러 비상식적인 문제를 갖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이다. 한국 사회의 업그레이드는 이러한 악습을 ‘척결’할 때만 가능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새는 두 날개로 난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경향신문. 201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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