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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G2시대, 대만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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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1-30 14:20 조회21,4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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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 선거의 해로 불리는 올 첫 대선에서 대만은 여당을 선택했다. 예상과 달리 국민당 마 잉주(馬英九) 총통은 민진당 차이 잉원(蔡英文) 후보에게 80만표 차이로 낙승했다. 개표 초반부터 앞서 나가 그 기조가 그대로 유지됐다고 하니 정권교체와 첫 여총통의 탄생을 기대한 축으로서는 좀 싱겁게 되었다. 동시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 겹경사를 맞았다. 요컨대 대만인은 대선과 총선 모두, 주권론에 민감한 민진당이 아니라 양안(兩岸)안정론을 내세운 여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물론 그 속내는 간단치 않다. 무려 17% 차이로 압승한 4년 전 대선에 비해 이번 마 총통의 득표는 현저히 떨어졌다. 6% 앞섰을 뿐이다. 총선에서도 국민당 64석으로 의석 과반 점유는 허용했을 망정 민진당이 기존 27석에서 40석으로 늘었으니 선전한 셈이다. 이 각도에서 보면 총통과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 드러난 대만 민심은 복합적이다. 마 잉주의 대중(對中)정책에 대한 대만 유권자의 불만이 더 분명히 표출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사실 反共不反中(반공불반중: 공산주의는 반대하지만 중국은 반대하지 않는다)을 표방한 마 총통의 정책은 실용적이다. 先經後政(선경후정: 경제가 우선이고 정치는 나중이다)과 先易後難(선이후난: 쉬운 것을 앞세우고 어려운 것은 뒤로 한다)으로 짝을 맞춰 천 수이볜(陳水扁) 시절 악화된 양안 관계를 풀어낸 마 총통의 행보는 3통(通郵․通港․通商) 실시를 바탕으로 중국판 FTA라 할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 대만 경제성장을 이끈 데서 정채를 발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짜 보수’의 유연성이라 할 만하다.

 

한편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쫓겨온 국민당의 친중에 대해 국민당 독재에 저항한 민진당의 탈중(脫中)지향은 현실정치의 간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마잉주의 정치적 후견인 장징궈(蔣經國, 1910~88) 총통 시절에도, 그가 아프면 대륙에서 비밀히 약을 보냈다는 소문이고 보면, 국공합작의 전통은 연면하다. 아버지 장 제스(蔣介石, 1887~1975)를 이어 총통에 오른 부자세습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그는 젊은 시절 소련 유학생이었다. 1935년 소련에서 결혼한 부인도 러시아인이다. 장 징궈의 그림자는 길다. 마 잉주가 그의 비서출신이라면, 차이 잉원의 멘토 리 덩후이(李登輝) 전 국민당 총통은 장 징궈의 후계자였다. 장 징궈는 외성인(外省人)출신이지만, 그 후계자 리 덩후이는 본성인(本省人)이다. 이미 외성인의 독점적 지배가 명이 다했음을 짐작한 그는 정관계(政官界)에 본성인의 진출을 방조함으로써 다음 시대를 준비했다. 그속에서 본성인 출신 최초의 국민당 총통이 나왔고, 그 끝에 민진당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지난 대선에선 그의 비서 마잉주가 다시 정권을 탈환했고, 이번 대선에선 새로운 국공합작을 추진한 그의 비서와, 양국론(중국과 대만은 한 나라가 아니라 두 나라)을 제창한 그의 후계자 리 덩휘이가 미는 민진당 후보가 겨뤘다. 결국 그의 비서가 선거로 연임한 최초의 총통이란 명예를 거머쥐었으니, 이제 대만민주주의는 자위를 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중국은 전과 달리 북풍을 자제했다. 물론 중국은 마 잉주 편이다. 후 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양안정책의 구호로 내세운 以經制政(이경제정: 경제로 정치를 제어한다)은 마 잉주의 先經後政과 호응하는데, 중국판 햇볕정책이 소리소문없이 먹혀들었던 터이다. 타이상(臺商, 대륙에서 활동하는 대만상인) 100만 가운데 30만이 양안관계의 불안을 가져올지도 모를 민진당의 승리를 막기 위해 ‘귀향투표’ 대열에 합류했다는 보도는 그 상징이다. 이 투표를 중국정부가 은밀히 독려했다는 소문이 없지 않지만, 이미 양안의 경제교류가 두터워진 데서 오는 자발성이 주동적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더욱 흥미롭다. 선거 직전, 미국재대(在臺)협회(American Institute in Taiwan, 약칭 AIT) 전 회장 더글러스 팔((Douglas H. Paal)이 TV인터뷰에서 마 후보를 지지하고 차이 후보를 비판하여 큰 소동이 났다. 이에 대해 AIT는 서둘러 팔의 발언은 미국의 입장이 아니라고 부정했는데, 선거 직후에는 재빨리 “양안의 번영과 미대(美臺)관계의 강화”를 추구하는 마 총통의 당선을 환영했다. 도대체 AIT는 무엇인가? 이 괴상한 이름의 기관은 1979년 1월 1일 미국이 중국파트너를 타이베이(臺北)에서 베이징(北京)으로 바꾼 직후 설립되었으니, 베이징을 의식해 이름만 바꾼 주대만(臺灣)미국대사관인 셈이다. 더구나 더글러스 팔은 거물이다. 중국식 이름(包道格)도 지닌 그는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의 아시아 정책 특보를 지낸 중국통으로 북한 관련하여 한국도 방문한 바 있는 현 카네기재단 연구담당 부회장이다. 중국과 대만의 도발행동을 동시에 제어하는 이중억지전략(dual deterrence)을 선호하는 보수파이기도 하려니와, 중국의 협조가 절실한 부시행정부에서 천 수이볜 정부가 골칫거리였다는 점을 감안컨대, 그의 발언이 우발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저나 미국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정말이지 대외정책에 관한 한 오십보백보다. 하여튼 이번 대만선거에서 중미는 훈수꾼으로 멋지게(?) 공조했다. 미중은 대립하는 듯하지만 점점 더 협력자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I. 월러스틴의 통찰이 상기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장기판은 훈수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서 국민당과 민진당의 정책이 상호수렴된 점도 유의할 대목인데, 양안 교류의 진전으로 대만민주주의가 해협을 빠르게 횡단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인상적이다.


최원식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 서남포럼 운영위원장
(서남포럼. 2012.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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