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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당신 생각 -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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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3-08 14:25 조회28,9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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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에는 하고 넘어가야 하는 얘기가 있다

 

무거운 안개구름이 밀려들어
귀밑머리에 젖어도
한번은 꼭 해야만 되는 얘기가 있다
잠든 나귀 곁에 앉아서
나귀의 귀를 닮은 나뭇잎으로
밤바람을 깨워서라도
그래서라도 꼭은 하고 싶은 그런 얘기가 있다

 

시인은 무엇을 얘기하려는 걸까요? 시에는 당신에 대해 생각한 내용은 있지 않고 간절함만 있어요. 시가 짧아서 이야기 못했나? 시가 지금의 열 배가 되었어도, 필경 하고 넘어가야 할 그 얘기가 무언지 들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나는 당신 생각을 했어요, 하고 있어요, 내내 하게 될 거예요. 이 말의 되풀이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 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롤랑 바르트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런 것. "매혹을 묘사한다는 것은, 결국 '난 매혹되었어'라는 말을 초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금이 간 레코드마냥 그 결정적인 말밖에 되풀이 할 수 없는 언어의 맨 마지막에 이르면…"('사랑의 단상') 시인의 시집을 펼치니 김명인 시인의 시 한 줄이 제사(題辭)로 적혀 있습니다. "어느덧 나는 내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 와 있다"('침묵'). 바로 이런 거죠. 마음 어디께 소용돌이로 남아 나를 고요한 반복 속으로 휘몰아가는 당신 생각.


진은영 시인
(한국일보. 201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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