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3년 반짜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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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3-12 12:29 조회34,4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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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리도 무능하고 무책임한지, 요즘 민주통합당이 하는 걸 보면 짜증만 난다. 주위에선 복지 확대도 새누리당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리가 커가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새누리당에 복지국가 건설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당은 복지정책은 일부 강화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체제 자체를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바꾸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당의 이념이나 지지기반 등에서 오는 제약과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그 답답한 와중에 낭보가 전해졌다. 지난 7일 민주당이 통합진보당과 ‘비례대표제(PR) 연대’에 잠정 합의했다는 것이다. 양당은 보편적 복지 및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여러 정책들과 함께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야권연대의 공동정책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본 지면을 통해서도 누차 강조했지만, 비례대표제 중심으로의 선거제도 개혁은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건설의 필요조건에 해당한다. 수십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안정적 복지국가들은 모두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그러한 선거제도에서라야 진보, 중도진보, 중도보수파 정당들로 이루어지는 ‘친복지연대세력’의 장기집권이 가능하고, 그래야 장기간에 걸쳐 큰 비용을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을 요하는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건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야권이 PR연대로 총선을 함께 치르기로 했다니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즉각 다음 단계, 특히 야권연대의 대통령 후보(자격)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PR연대의 형성이 비례대표제의 개혁을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설령 ‘민주진보연대’ 세력이 19대 국회를 장악할지라도 그 국회가 스스로 선거제도 개정안을 가결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의원들은 대개 자신들을 당선시켜준 기존 선거제도를 선호하고, 불확실성의 세계로 이끌 새 선거제도의 도입에는 반대한다. ‘제대로 된’ 선거제도의 개혁은 국회가 아닌 시민이 주도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민들의 주도력을 끌어낼 수 있을까? 그것은 국민투표 회부권이 있는 대통령이 할 수 있다. 요컨대, PR연대의 대선 후보는 국민투표를 통해 비례대표제 개혁안을 관철시킬 의지와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더 바람직한 후보는 ‘3년 반짜리 대통령’을 공약할 수 있는 정치가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실제로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그것은 2016년 총선부터 적용될 수 있다. 그때부터 한국의 정당체제는 다른 비례대표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유력 정당들이 상존하는 다당제로 가게 된다. 따라서 이제 의석의 과반을 차지하는 정당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대통령은 언제나 소수파일 공산이 크다. 여소야대 상황의 상시화는 대통령의 수행능력을 크게 제한하여 국가 혹은 정부의 실패로 이어지곤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만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권력구조를 손질하여 정당들 간의 연합정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연립정부-친화형 권력구조로의 개편은 아예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삼권분립 강화나 양원제 도입 등을 통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정도의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국회와 대통령 간의 역학관계를 규정한 헌법 조항들의 수정은 불가피하다. 이때의 문제는 양 기관의 임기가 서로 달라 그들의 상대적 권력을 동시에 변경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개헌을 3년 반짜리 대통령이 추진하면 문제는 쉽고 빠르게 풀린다. 그의 임기는 2016년 19대 국회와 함께 종료되기 때문이다.
3년 반 동안만 대통령직을 맡아 획기적인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이어 그것과 짝을 이루는 연정형 권력구조까지 견인해낼 수 있는 정치가가 이번 대선을 통해 등장한다면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2013년 체제’를 구축한 위대한 영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야말로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으로 불려 마땅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위인을 찾아내야 한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경향신문. 201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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