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따뜻한 자본주의는 정치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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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9-02 16:32 조회21,6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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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명박 정부가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며 격차를 줄여가는, 이른바 ‘공생발전’론을 주창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신자유주의 퇴조 경향이 뚜렷하던 시기에 집권해서 그동안 거의 흔들림 없이 ‘국가주도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유지해오던 ‘역주행’ 정부였다. 그 정부가 지금 ‘따뜻한 사회’를 외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조선일보는 이보다 조금 앞서 신자유주의와는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고 이젠 ‘따뜻한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며 ‘자본주의 4.0’을 대안모델로 제시했다.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더 앞서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2009년에 ‘상생발전체제’를 발표했다. 이 또한 사회안전망 강화, 중소·대기업의 상생 성장, 양질의 고용 증대, 시장의 공정성 제고 등을 통해 ‘따뜻한 시장경제’를 만들자는 신자유주의 대안담론이다.
신자유주의의 기득권 집단들이 이렇듯 그 체제의 피해자나 최소 수혜자 집단들에게 ‘따뜻한’ 마음씨를 보이자고 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명심할 것이 있다. 이명박 정부, 조선일보, 삼성경제연구소 등이 내놓은 대안체제의 운영 주체는 공히 시장과 기업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길항관계는 흔히 노동과 자본, 정부와 기업, 국가와 시장 간 등에 형성된다고 하는데, 세 모델 모두에서 노동, 정부, 국가의 역할은 빠져있거나 최소화되어있다. 그러니 그 모델들에서는, 예컨대, 배려사회를 갈구하는 이 시대 최대의 화두인 복지국가론을 찾아낼 수가 없다. 복지국가란 ‘시장을 거스르는 정치’에 의해 건설되는 것인데, 정치의 역할이 무시 혹은 경시되는 모델에 어떻게 복지국가론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신자유주의보다는 다소 따뜻한 건진 몰라도 셋 다 근본적으론 여전히 자본, 기업, 시장의 자유를 중심에 놓는 보수적 혹은 경제적 자유주의 구상일 뿐이다. 공생발전과 자본주의 4.0은 애당초 시장과 기업이 주도해야 이룰 수 있는 체제들로 상정돼있다. 상생발전체제에선 정부의 역할이 요청되긴 하나 그것은 오직 ‘시장친화적’ 조율 정도에 그치며, 주역은 역시 대기업이 맡는다. 결국 이 대안모델들에선 신자유주의의 핵심 주체들이 계속 그 주도 역할을 유지하게 된다.
이는 고작해야 재벌과 대기업 등에 좀 더 ‘착한’ 자본주의로 가도록 노력해달라는 요구, 부탁, 혹은 애걸에 불과하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그들의 따뜻함을 담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기업의 자율성과 자본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자유시장경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제한적 개혁론에 안주하게 될지 모른다. 구속력 있는 유의미한 자본주의 개혁을 원한다면 그 틀을 벗어나 ‘조정시장경제’를 꿈꾸어야 한다.
무릇, 폴라니가 시사했듯, 따뜻한 자본주의를 위한 시장의 조정은 시장이 사회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즉 시장이 일반시민들 간의 협의나 합의에 의해 조정되고 통제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시장이 시민사회에 의해 조정되도록 하는 것은 민주정치의 힘이다. 시장경제에서의 민주주의란 결국 강자와 부자에 대한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대항력 혹은 길항력을 정치적 방식을 통해 유지시켜주는 체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길항력은 구체적으로는 시장조정 과정에서 발휘된다. 그러니 민주정치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효과적인 시장조정 참여를 정치적으로 보장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 임무가 제대로 수행될 때 시장의 사회적 조정은 가능해진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의 참여는 기본적으로 정당을 통해 이루어진다. 노동,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약자들의 이익과 선호가 시장조정 과정에 효과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그들을 대변하는 정당들이 존재할 때이다. 그러한 정당들이 의회에 포진해있고, 정부를 구성하며, 국가를 운영할 때 따뜻한 자본주의는 가능해진다. 이것이 노동, 정부, 국가의 역할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보수 진영의 상기 대안모델들을 진정성 있는 것들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정치변수가 생략된 자본주의 개혁론은 무지 아니면 나쁜 의도의 소치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1.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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