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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미 공화당이 집권하면 왜 살인·자살률 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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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9-29 13:21 조회22,2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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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폭력의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한 정신의학자가 통계를 분석하다 수수께끼에 빠졌다. 그가 분석한 자료는 1900년부터 미국 정부가 매년 공식적으로 펴낸 살인율과 자살률 통계였다. 수많은 연구를 해 온 저명학자였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 앞에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첫째, 1900년부터 2007년 사이의 공식 통계상에서 왜 살인율과 자살률이 함께 늘어나거나 함께 줄어드는 것으로 나오는가? 살인과 자살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정신적·심리적 문제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자살과, 범죄적 동기로 타인을 죽이는 살인이 어떻게 같은 추세로 설명될 수 있는가? 둘째, 19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왜 살인율과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시기와 감소하는 시기가 번갈아 나타나는가? 이 통계수치를 연도별 그래프로 만들어 보았더니 이 기간 동안 세 번의 산꼭대기와 세 번의 계곡 형태가 나타났다. 기존의 설명방식으로 도저히 이 문제들을 만족스럽게 풀기 어려웠다. 이 학자는 살인과 자살을 합해서 이 현상을 ‘치명적 전염성 살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정신의학자는 치명적 전염성 살해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세 번의 시기가 모두 공화당 소속의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와 겹친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또한 살해율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세 번의 시기가 민주당 대통령의 집권 시기와 겹친다는 점도 확인했다. 더 자세히 조사해 보니 미국 전체의 살해율이 공화당 대통령의 취임 직후부터 늘기 시작해서 임기 말년쯤에 최고점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민주당 대통령이 취임하면 살해율이 줄기 시작해서 임기 말년쯤에 최저점에 도달하였다. 1900년 현재 미국에서 살인율·자살률을 합한 살해율은 10만명당 15.6명이었다. 그때부터 2007년까지, 한 세기가 넘는 기간에 공화당 대통령들이 59년을 집권했는데 공화당 집권 기간을 통틀어 1900년과 비교해서 살해율의 순누적 증가분이 19.9명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대통령들이 집권한 48년 동안에는 살해율의 순누적 감소분이 18.3명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살인과 자살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났고, 민주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살인과 자살이 훨씬 덜 발생했던 것이다.

이러한 발견에 스스로 놀란 정신의학자는 이 결과가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지를 여러 방면으로 크로스체크해 보았다. 특정 정당 대통령의 집권과 살해율 사이에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니라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려면 공화당과 민주당이 취한 서로 다른 정책들이 사람들의 행동에 서로 다른 효과를 미쳤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공황이나 세계대전 등 일반적인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모두 분석해 보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통계를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어떤 다른 요인들을 고려해 보더라도, 공화당-민주당 집권 시기와 살해율의 변동 간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인과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은 말 그대로 ‘세기의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 정신의학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공화당이 추구하는 정책은 사람들을 강력한 수치심과 모욕감에 노출시키기 쉬운 정책이다. 열패감와 열등감을 조장하며 타인을 무시·경멸하도록 부추기고 불평등을 찬미하는 문화를 숭상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실했을 때, 특히 해고를 당했을 때, 극도의 수치심과 모욕감을 경험한다. 이런 식으로 수치심과 모욕감이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는 ‘의도적 살해’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의도적 살해는 타인에게도(타살), 또 자신에게도(자살) 일어난다. 즉, 어떤 정당이 내세우는 정책의 방향이 여러 형태의 사회경제적 스트레스와 불평등을 조장하고 그 결과 실업률, 수치심, 모욕감이 높아지면 그 사회에선 필연적으로 살해율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정신의학자는 의사답게 이 문제를 담배와 폐암의 관계에 비유한다. “공화당과 살해율 간의 관계는 담배와 폐암 간의 인과관계만큼이나 강력하고 일관성 있고 통계적으로 유의하다.” 그러므로 살해율에 관한 한 공화당은 ‘리스크 요인’이고 민주당은 ‘보호 요인’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정치적 민주주의에만 신경을 썼지 사회적 민주주의는 간과한 탓에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있는 모든 나라들 중에서 인구 대비 살해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런 연구를 내놓은 정신의학자는 뉴욕대학의 제임스 길리건 교수다. 그가 올여름에 출간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더 위험할까?>라는 책 속에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상세히 나와 있다. 정신의학 문제를 연구하다 우연히 정치적 결론을 내리게 된 길리건 교수는 폐암을 치료하는 암 전문 의사만큼이나 양심적이고 초연하게 결론을 내린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질적인 차이가 있음이 통계적으로 드러났다. 이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와 직결된다. 폐암을 퇴치하기 위해 담배를 끊어야 하듯 살해율을 낮추기 위해선 공화당을 평화적으로 끊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물론 어떤 정당 자체가 위험하다기보다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정책을 거부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까지 정치적 결론이 명쾌한 비정치적 책을 읽은 적이 없고, 이렇게까지 사회적 함의가 분명한 정신의학서를 읽은 적이 없었다. 에밀 뒤르켐의 고전 <자살론>이 21세기 버전으로 환생했다고나 할까. 마침 이 책의 번역이 추진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선거의 계절을 맞아 우리 독서계에 돌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길리건이 인용한 랠프 에머슨의 말 속에 그 답이 있다. “역사를 분석할 때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역사의 인과관계는 흔히 단순한 데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교수
(한겨레. 201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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