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학교폭력, 우리가 가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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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1-09 07:23 조회21,6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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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이후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경찰은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달 안에 대책을 내놓겠다며 부랴부랴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형사처벌 연령을 14살 이상에서 12살 이상으로 낮추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 모든 소동을 바라보는 심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사회는 지금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학교폭력은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늘어만 왔다. 최근 한·중·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절반에 가까운 49%가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38%, 일본은 28%였다니 우리의 심각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책은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원인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 대책에는 그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가해자를 처벌하고 격리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 구속돼 처벌을 기다리는 두 소년만 가해자일까? 아니다. 오히려 학교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채 방치한 우리 모두가 가해자다. 학교는 일반적으로 군대나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의사와 내적 리듬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억압적 사회다. 학생들의 일탈행위는 이런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서 줄곧 있어 왔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제도적 억압에 더해 입시라는 질곡이 덧씌워져 있다. 입시경쟁은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해도 공부 안 하고 엇나갈까봐 내버려둔다는 부모가 30%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부모의 관심은 오로지 성적뿐이다. 이런 부모 등쌀에 교사들 역시 제대로 된 인성교육은 엄두도 못 낸다. 인성지도를 책임지도록 돼 있는 상담교사조차 본업 대신 입시상담에 주력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서울 동덕여고 상담교사 박현주씨는 “좋은 성적이란 결과물이 아이들 자신보다 더 존중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모든 아이들은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사랑의 결핍, 배려의 결핍이다. 아이들이 아프다고 외쳐도 어른들은 외면해 왔다. 마음의 문을 닫아건 아이들은 컴퓨터나 오락에서 그 위안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폭력물과 음란물이 넘쳐난다. 따스한 인간적 접촉과 배려가 결핍된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할 능력을 키우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도 모두 우리가 만들어놓은 이 끔찍한 사회, 끔찍한 교육 환경의 희생자다. 문제가 되는 방식으로 배우고 행동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바뀌지 않고는 학교폭력이 해결될 수 없다. 아이들을 쫓아내는 대신 그들의 병든 마음을 보살피고 스스로 반사회적인 전략을 버릴 수 있도록 돕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단기적 대책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안한 학교폭력 신고전화를 마련하고, 학부모와 교사 및 지역사회 인사들로 학교폭력 구조대를 만들 수도 있다. 또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에게까지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학생인권조례를 제대로 시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울러, 극도의 경쟁으로 날카로워진 아이들의 공격성을 완화할 수 있는 인성계발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동덕여고는 지난해 1학년을 대상으로 주 1회 명상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전후를 비교한 결과, 학생들의 자존감이 향상되고 압박감이 줄어드는 성과가 확인됐다고 한다. 아이들은 명상 수업의 느낌을 ‘치유’, ‘메마른 땅의 소낙비’, ‘사막 속 오아시스’ 등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어떤 단기 대책도, 아이들을 메마른 사막으로 몰아넣는 입시 위주의 경쟁체제에서 그들을 해방시키는 장기적인 대책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제대로 효과를 올릴 수 없다. 핀란드처럼 좌우를 넘어 모든 당사자들이 나라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아이들을 죽음과 폭력으로 내모는 ‘죽음의 교육’이 아닌 ‘살림의 교육’을 실현할 방안을 찾아보자. 마침 선거철이니, 주요 정당들이 교육정책만큼은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공통으로 마련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 아이들을 살리자!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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