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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진보·보수의 두뇌구조와 상생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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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4-22 14:04 조회34,5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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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 출세가 보장된 놈이 왜 바보같이 데모를 하고 인생을 망치냐?” 강제징집으로 전방에서 근무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서빙고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내게 사단장이 불호령을 했다. 얼떨결에 “아무래도 제 유전자 탓인 것 같습니다”라고 했었는데, 이제와 보니 그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사물을 인식하는 스타일 달라

최근 정치적 성향과 두뇌구조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놀라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런던대학 신경과학 교수들이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두뇌와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두뇌를 스캔해서 비교한 결과 뚜렷한 구조적 차이를 발견한 것이다. 진보성향의 사람들 두뇌에는 애매하거나 상충되는 정보를 잘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부분이 크게 발달해있고, 보수성향의 사람들 두뇌에는 위협을 감지하고 공포를 느끼는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가 크게 발달해있었던 것이다.

진보성향의 사람은 보수성향의 사람에 비해 변화에 대한 수용성이 높고,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인식능력이 우월하며, 자기가 익숙한 것과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관용하는 태도가 발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태적 특성이 두뇌구조에 기인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사실 정치적 성향이 두뇌의 특성과 관련돼 있다는 가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됐다. 이전에 있었던 여러 연구 중 한 가지 사례만 들자면 미국의 뉴욕대와 UCLA의 신경과학자들이 발견한 인식 스타일과 정치성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 실험참여자들에게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M이 나오면 키를 누르고 W가 나오면 누르지 말라는 지시를 한 후 주로 M을 보여주다가 가끔 W를 보여주었다. 마치 “앉아, 앉아, 앉아, 서!”를 몇 번 하다가 “앉아, 앉아, 앉아, 앉아!”를 외치고, 일어선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게임과 흡사하게 말이다. 이 실험에서 진보성향의 사람들에 비해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훨씬 실수를 많이 했다. 보수성향의 사람들은 익숙한 패턴에 따라 사물을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고,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기존 패턴의 변화 또는 기존 패턴과 상충하는 정보를 더 잘 수용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런던대 학자들의 연구는 이런 인식 스타일의 차이가 실제 두뇌구조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연구결과가 정치성향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데는 유전적 요인 외에도 사회경제적 지위나 교육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뇌구조의 차이를 근거로 진보가 우월하다거나 보수가 더 낫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잘못이다. 진보가 변화에 대한 수용성이 높고 기존의 익숙한 것을 뛰어넘는 창의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진보는 발전의 원동력이고 보수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변하면 발전이 아닌 혼돈이 오고, 너무 새것을 찾다보면 인식의 혼란과 생존의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다름에 대한 관용도 좋지만, 일체감을 통한 공동체 의식도 필요하다. 그래서 진보는 보수가 있어야 그 가치가 살아난다. 마찬가지로 보수도 진보를 필요로 한다. 보수일변도의 사회는 정체되고 편견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국은 진보가 더 강화돼야 균형

진보와 보수가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진보의 장점도 살아나고 보수의 장점도 살아난다. 유구한 진화과정에서 진보적 두뇌나 보수적 두뇌 중 어느 하나만 살아남는 대신 두 가지 두뇌구조가 일정한 분포를 이루게 된 데는 아마도 이러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진보나 보수나 일방적 승리를 목표로 하는 것은 잘못이다. 서로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필요성을 인정하고 공존과 균형을 통해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 단, 역사적 특수상황 때문에 진보가 너무 억눌려왔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진보가 좀 더 강화되어야 건강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2011.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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