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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중국모델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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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5-11 13:32 조회28,0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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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의 대국굴기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에서도 작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전사회의 핵심 논점으로 떠올랐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중국은 무엇이고 또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읽을거리가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작년에 국내에서 출간된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도 출시되자마자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곧 국내에서도 출간될 마크 레너드(Mark Leonard)의 What does China Think?도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책에는 독특한 강점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주목되는 특징은, 저자가 중국을 “우리의 세계에 근원적인 영향을 미칠 사상의 강국”으로 인식하고, 중국이 혼자 힘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보는 점이다. 그것은, 요즈음의 화두로 바꿔 말하면, ‘중국 모델’을 가리킨다. 미국 주도형 신자유주의적 발전모델인 ‘워싱턴 컨센서스’를 패러디한 ‘베이징 컨센서스’란 개념이 2004년 라모(Joshua C. Ramo)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2008년 이후로는 중국 내부에서도 시장경제와 새로운 가버넌스를 결합시킨 ‘중국모델’이 활발하게 논의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런 조류 속에서 저자는 중국모델을 황하 자본주의, 협의형 독재정치, 종합국력이라는 세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과 유럽이 추구해온 이상에 대한 도전이라고까지 적극 평가하는 것이다.

 

경제, 정치, 국제관계라는 세 영역에서 형성중인 중국 모델의 내용을 한 권으로 소개하는 책은 쉽지 않은데, 이 책에서는 그 심각한 주제가 한 손에 잡히도록 쉽고도 생동감 있게 서술된다. 저자가 단순히 문헌자료만을 읽고 저술한 게 아니라 중국의 여론과 정책 형성에 영향력 큰 지식인들을 다수 인터뷰하고 개혁 모델이 실험되고 있는 현장들을 방문 조사한 결과까지 활용해 저술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강단의 연구자라기보다 영국 등지의 외교정책 싱크탱크의 연구원으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할 뿐만 아니라 국제문제를 다룬 베스트셀러를 낸 30대 후반의 저술가로서의 경력을 잘 녹여낸 저자의 논술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미래를 선취하는 실험구(實驗區)들을 그가 취재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사실 거대한 영토의 중국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먼저 개혁을 실험한 뒤 그 결과를 평가해 전국적 규모로 확대하는 프로젝트가 일찍부터 시도되었다. 이 책에 소개된 허난(河南) 난제촌(南街村)에서 싹 트는 황하 자본주의, 쓰촨성 핑창현(平昌縣)과 충칭시(重慶市)에서 시행되는 협의형 민주주의의 실험에 대한 저자의 관찰은 이 책의 설득력을 한층 더 높여준다.

 

또 다른 특징은, 저자가 이른바 중국 ‘신좌파’ 지식인들의 사상과 실천에 중점을 두고 중국 모델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균형을 잡기 위해 중국의 사상 지형에서 서로 대립되는 ‘자유주의파’와 신좌파의 견해 양쪽 모두에 귀를 열고 있지만, 역시 후자에 중점을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중국의 신좌파는 1990년대부터 일부 지식인들에게 부여된 호칭으로서 자유주의파와 짝을 이루는 이분법적인 발상에서 나온 다소간 자의적인 분류이다. 그렇지만 1992년 떵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래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깊이 편입된 중국 현실을 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사상적 조류(와 그들간의 논쟁)를 잘 드러내는 데 유용하다. 신좌파의 공통점은 구좌파와 달리 시장개혁을 지지하되 자유주의파와 달리 시장화가 초래한 불평등 문제를 깊이 우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경험의 ‘합리적 요소’와 중국적 현대화의 특징을 살려 근대를 극복하는 새로운 제도 창안을 제창한다. 90년대만 해도 그들의 역할이 주로 문제를 제기하고 선언하는 데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현대화가 가져온 사회갈등을 조절하기 위해 ‘조화사회’(和諧社會)를 추구하는 후진타오 정부와 협력하면서 그 개혁 정책 방향에 깊이 개입하는 모양이다.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라는 자유주의파와 달리 국가의 역할을 일정하게 인정하는 그들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저자가 정치엘리트나 경제엘리트가 아닌 주요 지식인들의 견해에 토대를 두었다는 것은 중국 상황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다당제가 활용되지 않는 중국에서 지식인간의 논쟁이 정치 과정의 일부 곧 정치의 대용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과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종종 그들을 청해 강의를 듣는 등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저자가 말한대로 “중국의 지식인이 실제로 서구의 지식인보다 국가에 대한 영향력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역할을 하는 지식인들은 극히 일부에 속하고 그들을 포함한 전체 지식인들이 압제와 투옥, 검열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 지식인사회의 논쟁이 국가정책의 변화에 영향을 미쳐왔고, 앞으로 공공영역의 확대를 통해 (국가와 공산당 바깥에서) 공공정책의 조정에 작용하여 중국의 발전 방향 모색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면, 시대의 풍향계인 그들의 움직임은 당연히 주목되어야 한다. 저자의 지적처럼 그들의 생각에 따라 우리의 세계가 변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면 더더욱 중요한 일 아닌가.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에서 아주 간명하게 설명된 (특히 신좌파의) 중국모델이 오늘의 중국은 물론 내일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길잡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좀더 시야를 넓혀 중국모델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를 생각하게 되면, 저자의 논지는 곧 논쟁적인 주제로 바뀌어 더 진전된 논의를 촉발한다. 과연 중국모델은 구미의 발전모델을 대체할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중국이 끝내는 구미와 같은 역사발전의 경로 즉 공산당의 일당지배가 해체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결합된 길을 걸을 것이라는 관점을 가진 사람에게는 중국 모델론이란 과도기에 처한 중국의 자신감의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이와 반대로 매우 급진적 관점을 가진 사람에게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서 중국의 부상이 진보적 구실을 하기를 기대하는 일부 해외 좌파의 소망 때문에 중국모델이 과대평가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동향 자체가 이미 세계사적 문제로 된 이상 중국의 모색을 세계를 향해 제기한 ‘열린 질문’으로 간주해야 하고, 각자의 이념적 지향과 관계없이 실사구시적으로 깊이 있게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

 

세계사적 문제로서의 중국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쟁점은, 중국모델이 다른 나라에 적용될 수 있는가이다. 말하자면 중국 모델 수출론이라 할 수 있는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 중국 지식인들은 매우 조심스럽거나 아예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듯이 아프리카에서는 이미 (미국이 발신한 워싱턴 컨센서스가 아닌) 황하자본주의 같은 중국모델의 요소가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경제성장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가져온다는 보편적 관련성을 깨뜨리는 근거로 중국 사례가 거론되는 실정이다. 저자는 이런 현실에 착안해, ‘평평한 세계’로 대변되는 미국식 세계화에 도전하는 ‘성벽으로 나뉘는 세계’(walled world)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중국이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 의의를 일정 정도 인정하면서, 이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성벽’은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많은 문이 달린 성벽’이어야 한다고 바꿔 말하고 싶다.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발전모델은 (패권적인 구미식 보편주의가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는 지구적 보편성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쟁점은, 중국의 신좌파가 점차 국가와 긴밀해진다는 문제이다. 그들이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재조정해 제도 개혁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당국(party-state)체제가 강고한 중국 현실에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이 지닌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대신에 시장논리에 맡기자는 것이라면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국가의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은, 국가의 최소화(더 심하게는 탈국가화)가 아니라 단기적인 국가개혁 작업을 추구하면서 장기적으로 국가주의를 극복하는 과제와 결합시키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본다. 중국의 신좌파가 민중의 일상적 요구에 호응하면서 그 과제를 일관되게 수행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지켜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끝으로 언급할 쟁점은 그들이 중국발전 모델의 특수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처럼 중국 사회주의혁명의 유산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 점차 중국 전통 유산(예컨대 전통시대의 조공질서나 천하관 또는 유교적 가치)과 접맥하고 있는 문제이다. 이 때문에 중화주의라든가 민족주의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문명적 자산을 활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중국적 문맥의 강조를 통해 과연 근대에 적응하는 변형된 길이 아니라 제대로 근대를 극복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따져 묻는 일이 한층 더 중요하다. 그들이 이 과제를 충실히 수행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참조할 공통 자산의 목록에 추가될 것이다.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 서남포럼 운영위원)

(서남통신. 2011.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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