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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상인들이여, 대표정당을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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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5-13 13:26 조회26,3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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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처리되는 과정을 가장 불안하고 힘겹게 바라봤을 이들은 필경 우리의 중소상인들이었을 게다. 협정이 발효되면 유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는 데다 미진하나마 대형점이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공세에 대한 보호막으로 여겼던 유통법과 상생법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국내외의 거대 포식자들에게 거의 무방비로 노출될 것을 걱정하며 그들은 특히 민주당에 크게 분통을 터트렸다. 입으로만 서민과 약자를 위할 뿐이지 실제로는 성장과 개방을 강조하는 한나라당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을 쏟아부었다.

이는 그만큼 민주당에 중소상인들의 기대가 컸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민주당은 제1야당인 데다 작년에는 ‘보편적 복지’를 강령에 포함하는 등 중도진보 정당으로의 자리매김 노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당 일각에서는 시장의 민주화와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는 진보적 자유주의 정당으로 발전해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터였다. 그러니 강자의 횡포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던 중소상인들이 어떻게 이 민주당을 믿어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FTA·SSM 민주당 기대 저버려

사실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중소상인 보호대책은 훨씬 강력하고 다양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대상인들과 소상인들 간의 사적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격상·확대시킴으로써 시장의 패자일 수밖에 없는 소상인들을 정치적 승자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정도의 정치권력은 충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주당은 SSM 침투 문제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심화 문제, 독과점 혹은 비민주적 시장경제의 문제, 더 나아가 사회 부정의의 문제로 키워 그 해법 마련의 장에 유통만이 아니라 전 영역의 중소기업, 시민단체, 학계 전문가, 일반 시민들까지 모두 초대할 수 있다. 그 경우 중소상인들은 그 밝고 넓은 정치의 광장에서 수많은 지지자와 협력자들에게 둘러싸여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도 있게 된다. 이런 것이야말로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진보파 정당이라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약자 보호 기능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 지금의 조건이라면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게다. 무엇보다 민주당 의원들은 ‘중소상인 표’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 표’ 정도의 가치를 획득하지 않는 한 중소상인 보호는 언제나 뒷전일 게다. 사실 지금은 작년에 그리도 중시하던 ‘복지 표’마저도 의심을 받는 지경이다. 특히 4·27 재·보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김근태 상임고문의 우려대로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중도실용 노선으로의 회귀 혹은 ‘우클릭’ 조짐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최근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한겨레의 전수조사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그러니 한·EU FTA 비준 과정에서 중소상인들의 이익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한 민주당 의원들이 과연 얼마나 있었겠는가.

중소상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대리인을 확보해야 한다. 대표정당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약자의 지위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것은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중소상공인 모두 ‘대표 없는’ 집단인 까닭에 규모는 막대하나 정치적으로는 왜소한 상태에 머물러왔다. 대표정당을 확보할 때 그들의 그 큰 규모는 비로소 그에 합당한 정치력으로 전환된다.

약소한 집단 정치력 학보 필요

중소상공인들이 대표정당을 확보하기 위해선 다음 두 가지 일에 매진해야 한다. 하나는 스스로를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자발적 단일 결사체로 조직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영남·호남 등의 지역이익을 뛰어넘는 중소상공인의 계층이익이 결집되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지역변수의 중요성이 감소되고 계층이나 계급 변수의 중요성이 증대되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일이다. 그래야 중소상공인들이 지역을 넘어서는 연대를 이룰 수 있다. 비례대표제의 획기적 강화가 그러한 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 두 가지 일이 이루어지면 ‘중소상공인 표’는 저절로 대표정당을 불러들일 것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1.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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