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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5·24 대북봉쇄정책의 파탄과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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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5-26 21:56 조회24,1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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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사이 세번째로 중국을 방문해 동북지방에서 멀리 남쪽의 양저우에 이르는 대장정 끝에 베이징에 도착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어제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회담이 열린 이날은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권이 천안함 사건을 이유로 북한과의 모든 교류를 중단한다고 선언한 5·24 조처 1주년 다음날이었습니다. 두 나라 정상의 맞잡은 손은 우리 정부의 대북 봉쇄정책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안이한 것이었는지 확인해주는 듯했습니다.
 

물론 정부나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5·24 조처가 북한 압박에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교역과 대북지원의 급감으로 “북한이 3억달러의 벌금을 내고 있는 셈”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이 그만큼 생존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대통령도 지난달 말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북 봉쇄정책의 영향으로 북한 사회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면서 지금이야말로 북한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적기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의 대북 송금에 대한 규제까지 추가로 도입하려는 것은 이런 정부의 인식에 따른 것인 듯합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도 지적하듯이 정부의 이런 판단은 현실과 엄청난 괴리가 있습니다. 중국이 우리가 떠난 빈 공간을 메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난해 식량 20여만t과 에너지 15만t을 북한에 지원했습니다. 두 나라 교역액은 32%나 늘어났고 중국 업체의 북한 진출과 중국의 대북한 투자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합니다. 대신 애먼 남북경협업체들만 업체당 평균 40억원에 가까운 손해를 보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북한에 대한 봉쇄가 북한을 굴복시키는 대신 우리 기업에 고통을 가중시키고 중국에만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꼴입니다.

 

이런 정책적 착종이 일어난 데는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위치를 간과할 정도로 우리 정부의 중국 인식이 천박한 탓도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중국 이해 수준은 지난해 중국이 천안함 사태에 대한 우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북한을 비호하는 것을 보면서 뒤늦게 중국에 대한 연구와 다양한 교류 확대를 지원하겠다며 부산을 떨고 있는 데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올해 주변외교와 관련해 역내국가의 단결을 강화해 역외국가의 이간책을 방지하고 한반도 및 해양분쟁에 적극 대응해 전략적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남성욱 국가전략연구소장은 이를 중국이 전략적 자산이자 완충지대로 간주하고 있는 북한의 붕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습니다. 원로 중국학자 안병준씨도 중국은 북한을 자기 세력권에 둬 현상유지를 고수해야 대미·대일 균형을 기하면서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비호하는 것은 냉혈적인 지정학적 판단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중국의 이런 입장은 중국의 대외적 입장을 대변하는 <환구시보>의 영문판이 가난하고 폐쇄적인 북한은 동북아시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중국은 북한이 풍요롭고 안정된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의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두루 살펴볼 때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희망적 관측에 기댄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현실성이 너무 떨어집니다. 카를 카우츠키의 말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북한의 경우엔 중국이란 울타리가 있어 그 가능성이 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가을 한-중 고위언론인 모임에서 장안취안 <인민일보> 국제신문주편(국제뉴스국장)이 했던 발언이 떠오릅니다. 그는 “우리 쪽에서는 이데올로기 문제가 해소됐는데 한국 쪽이 오히려 이데올로기로 자극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냉정한 현실주의에 입각해 있는 반면 우리의 대중국·대북정책에는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진정 북한의 변화를 추동하려면 이념적 잣대를 넘어선 좀더 현실주의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1.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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