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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원자력 발전에 목숨 건 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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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6-29 16:43 조회21,6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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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원자력 발전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했다. 2000년에는 좌파 정권에서 포기 결정을 했는데, 이번에는 우파에서 더 급진적으로 결정했다. 원래 우파는 원전 포기를 반대했다. 2009년 정권을 잡은 뒤에는 좌파의 결정을 뒤엎지 못했지만 원전의 가동 연한을 12년 연장해주었다. 이에 따라 당시에 가동 중인 원전 17기를 2035년께까지 돌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6개월 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사정은 급변했다. 원전 수명 연장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고, 원자력 포기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녹색당의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권력 유지 본능이 탁월한 우파의 수장 메르켈 총리도 즉각 반응했다. 그녀는 원전 17기 중에서 8기를 폐쇄하기로 하고, 나머지 9기는 단계적으로 폐쇄하여 2022년까지 독일에서 원전을 완전히 없애기로 결정했다. 이제 좌파에 이어 우파도 원전 포기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뒤엎는 일은 없을 것이고, 앞으로 10년 뒤면 독일에서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한국, 독일과 정반대의 길 선택


한국은 독일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독일에서 원전이 완전히 폐쇄되는 2022년에 한국의 원전은 지금의 21기에서 30기로 늘어난다. 2030년에는 거의 40기가 된다. 후쿠시마 사고는 하나의 작은 간주곡일 뿐, 이 추세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독일과 한국이 정반대인 까닭은 간단하다. 독일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고 재생 가능 에너지 비중은 늘어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는 반면 재생 가능 에너지의 비중은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2000년 전력 소비의 6%를 차지하던 재생 가능 전기가 2010년에 18%로 증가했다. 2050년에는 80%로 늘어난다. 한국에서는 2000년이나 2010년 모두 재생 가능 전기의 비중이 1% 정도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 2030년에도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 이와 달리 원자력 전기의 비중은 59%로 늘어난다. 전기 소비는 2030년이면 2000년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한다. 독일에서는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 그 결과 2030년에는 한국의 1인당 전기 소비가 독일의 그것보다 2.5배나 많아진다. 이미 지금도 30% 정도 더 많다. 그러므로 독일 시민과 정치인은 원전 없이도 전력 수급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대다수 시민과 정치인이 원전이 없으면 전기 공급이 끊어진다고 생각한다. 원전은 당연히 계속 건설해야 한다.

원전 포기는 자살행위?

한국은 원자력 발전에 목숨을 걸었다. 후쿠시마의 재앙을 눈으로 보면서도 계속 늘리겠다는 건 원자력 전기 없이는 못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에너지 소비 추세를 보면 정말 원자력 없이는 못 살 것 같다. 원자력 포기는 독일에는 어울리지만, 우리에게는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우리 대다수가 재앙을 감수하고라도 원자력 발전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원자력 발전으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날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라늄도 고갈된다. 2050년께면 값싼 우라늄은 사라진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대부분의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을 돌리기 위해 아주 많은 돈을 지불하고 우라늄을 사와야 한다. 당연히 전기요금도 크게 올라간다. 가계의 부담이 많이 늘어나고 산업경쟁력은 줄어든다. 국민경제 상황이 나빠진다. 결국 값비싼 우라늄을 사올 수 있는 지불 능력도 사라진다. 파산을 맞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은 달콤하지만 나중에는 쓰디쓴 결과를 가져오는 길을 선택했다. 원자력 포기를 선택한 독일은 지금은 재생 가능 전기를 위해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 전기요금이 비싸지고 가계와 기업의 부담도 조금 늘어난다. 그러나 10년 뒤 독일은 어두운 원자력의 질곡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밝은 태양에너지 시대로 나아간다. 2050년에는 석유와 석탄으로부터도 해방된다. 그러나 이때도 여전히 원자력의 주문에서 풀려나지 못한 우리 후손은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시사IN, 2011.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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