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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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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8-12 10:14 조회21,6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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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재정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는 상당기간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소비자들은 부채에 짓눌려 있고, 집값은 하락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현금을 쌓아놓고 대출을 꺼린다. 저금리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소위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미약한 회복세를 이끌어오던 재정이 앞으로는 오히려 경기를 위축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재정적자 문제와 정치적 리스크를 거론했다. 지난 30년간 미국 정치는 금권정치가 지배했다. 폴 크루그먼이나 라이시 같은 비판적 경제학자들의 지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학자들의 실증적 연구에 의해서도 증명된 사실이다. 금권정치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일부까지 지배했다. 금권정치 세력은 부자들과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을 줄기차게 추진했다. 부자 감세를 추진하면서 서민 감세는 반대했다. 군산복합체를 위한 복지정책이라 할 만한 군비 확장과 전쟁 놀음을 일삼으면서 서민들을 위한 복지 지출은 축소했다. 대기업과 금융자본을 위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고삐를 죄었다.

이러한 정책은 부자와 대기업을 세금과 규제의 족쇄로부터 해방시키면 경제가 성장하고 그 혜택이 가난한 이들에게까지 돌아간다는 공급중시 경제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그것은 허황된 궤변에 불과했다. 경제성장의 실적도 변변치 않았으며, 소득분배만 극도로 악화되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였던 미국이 이제는 선진국 중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게다가 재정적자가 누적되었고, 금융위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마침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대형사고까지 터졌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이 지속된 것은 경제 전체야 어찌되든 1% 부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초대박이었기 때문이다.

부채상한 증액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공화당과 기득권 세력의 뻔뻔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장기적인 재정건전성과 관련해서는 지금 정부 지출을 몇 조달러 줄이는 것보다 의료개혁을 제대로 하는 것이 몇 배 더 중요하다.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느라 의료개혁에는 악착같이 반대하면서 재정건전성 운운하는 것은 위선의 극치다. 금융위기로 전 세계를 수렁에 몰아넣은 월가가 정부 돈으로 살아난 후 보너스 잔치를 벌이던 바로 그 후안무치함이다. 이 기득권층의 후안무치야말로 미국 경제위기의 주범이고 미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힘이다. 기득권층이 절제와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욕심만 부리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없는 진리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 한국이 미국을 꼭 닮아가고 있다. 부자 감세와 재벌 규제 완화로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논리가 그렇고, 4대강 토목사업으로 토건세력 배불리기에 나선 것도 그렇다. 재벌은 살이 피둥피둥 찌는데 민생경제는 피폐해져가는 현실이 그렇다. 사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미국보다도 더욱 심각하다. 미국은 집값 하락과 가계부채 축소라는 고통스러운 조정과정을 어느 정도 겪어냈지만, 우리의 경우 늘어만 가는 가계부채가 위험한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미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무역이나 금융 면에서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한국 경제는 유난히 해외충격에 취약하다. 

지난주 아시아 최대 낙폭을 기록한 주식시장이 어제는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졌다. 벌써 몇 번째인가. 한국 경제가 불안정한 세계경제의 풍랑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성장지상주의를 버리고 안정과 민생, 분배와 고용을 중시하는 정책의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금리와 환율정책은 안정을 우선하고, 그 대신 민생과 고용을 위한 재정의 역할은 강화해야 한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2011.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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