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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패권 교체기의 한반도 미래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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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8-12 10:17 조회21,1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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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중국 언론은 연일 미국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인민일보>는 “미국과 유럽의 문제들은 서구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능장애에서 비롯됐다”고 질타했고, <신화통신>은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는 데 국제적 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인민일보>는 더 나아가 중국 보유 미국 국채를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저지하기 위한 ‘금융무기’로 사용하자고 주창했습니다.

중국 관영 언론의 이러한 미국 때리기는 물론 넘쳐나는 외환을 미국 국채에 ‘몰빵’한 중국 정부에 대한 중국인의 비난을 미국 쪽으로 돌려놓으려는 뜻이 큽니다. 하지만 동북아의 지정학적 측면에서 보면, 세계 유일의 초강국이었던 미국이 중국 언론의 훈계를 받는 처지로 전락한 것은 미국 패권 시대가 저물고 또 한 차례의 세력교체기가 시작됐음을 의미합니다.

새겨 읽을 것은 한반도가 전란에 휩싸이는 등 큰 고통을 겪은 때는 바로 이런 지정학적 세력재편기였다는 사실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0만 대군을 끌고 7년간 한반도를 유린했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뒤이은 병자호란은 조선의 집권세력이 주변 지역질서 재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했습니다. 일본이 소총 등 당시의 첨단무기로 무장하고 군사력을 키우는 동안 조선은 그에 대한 대비는 않고 오로지 명나라만 바라보았습니다. 만주족이 명을 무너뜨리고 청을 세운 뒤에도 조선은 그들을 야만족이라 무시하고 ‘소중화’(小中華)를 자임하며 턱없는 북벌론은 주장하다 병자호란을 초래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습니다. 한반도를 식민지로 전락시킨 19세기 말 20세기 초도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이 새롭게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고 청의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는 세력교체기였습니다.

이렇게 역사는 우리가 변화하는 지역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낡은 질서에 매달릴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보여주지만, 한반도 남북의 두 정권은 역사의 교훈과는 딴판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남쪽은 근거가 약한 북한자멸론에 기대 남북관계를 단절한 채 한-미 동맹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삼고 미국 추종에 여념이 없습니다. 북쪽은 핵으로 체제를 연명하며 필사적으로 중국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민족 전체의 안녕과 동북아 평화를 위한 긴 전망을 갖고 우리가 숨쉴 수 있는 틈새를 찾으려는 노력은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은 16세기 말 17세기 초나 구한말의 상황과는 다릅니다. 당시보다 우리의 역량이 훨씬 커져,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운신의 폭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몫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주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열린 ‘남북러 협력포럼’은 그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포럼에 참석한 러시아 학자들은 극동지역 개발에 대한 한국의 역할에 기대를 표명했습니다. 러시아는 내년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를 동시베리아 개발의 전기로 삼고자 하는데 그 협력 상대로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한국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1억여명의 만주지역 인구를 배경으로 이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은 두렵고,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상처와 영토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은 불편한 까닭입니다.

이런 틈새를 잘만 활용하면 우리는 시베리아 지역 개발에 참여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을 상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렛대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한국과 러시아는 일찍이 2001년 정상회담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우리 철도의 연결 및 시베리아 가스관 연장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진척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가 틀어져 버린 탓입니다.

결국 세력교체기의 한반도의 미래전략은 남북관계의 복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미국이나 중국 또는 러시아 등 어느 일방에 매달리지 않고, 나름대로 그들의 세력관계를 활용하면서 동북아에서 우리의 보폭을 넓힐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역사의 시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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