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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대항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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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9-02 16:36 조회21,5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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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5개월이 넘었다. 사고가 수습되면 사퇴한다고 약속한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결국 물러났다. 그동안 그가 자리에 연연하던 모습은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조롱거리가 됐다. 사퇴 압력도 거셌다. 그래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주요 이유는 재생가능에너지촉진법(자연에너지법)이 의회를 아직 통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자연에너지법은 태양에너지나 풍력 등으로 생산한 전기를 전력회사에서 의무적으로 원가 이상의 가격으로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정확하게 말하면 재생가능 전기 매입법이다. 간 나오토가 이 법을 총리직을 걸고 통과시키려 했던 이유는 그것 없이는 원자력 폐기가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에너지법으로 원전 폐기의 초석을 놓음으로써 자기 임무를 완수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원자력 폐기는 수십년 이상이 걸리는 일이다. 원자력을 재생가능 에너지원으로 완전히 대체할 때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염원이 흐트러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존재해야만 원자력 폐기는 쟁취된다. 재생가능 전기 매입법은 바로 시민들의 관심이 지속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 수단이다. 

일본에서도 전기 생산과 판매는 전력회사에서 독점한다. 시민은 전력회사에서 보내주는 전기를 수동적으로 받아쓸 뿐이다. 원자력 전기가 집으로 와도 거부할 수 없다. 그것에 대항해서 태양광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해도 전력회사에서는 사주지 않는다. 원자력 폐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따금 구호를 외치는 것 말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만일 전력회사에서 재생가능 전기를 사준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원자력을 폐기하려는 시민들이 직접 대항발전소 건설 운동을 광범위하게 벌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민이 여기에 동참해서 좋은 발전소의 주인이 되어 재생가능 전기를 생산한다면 원자력 폐기를 향한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관심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원자력 폐기를 모든 정당과 시민이 합의해서 결정한 독일이 이를 증명한다. 20년 전부터 독일 시민들은 수많은 대항발전소의 건설을 주도했다. 지금은 여기서 원전보다 많은 전기를 생산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전체 전기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었다. 독일 원자력업계는 기회만 있으면 이 흐름을 되돌리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시민들이 대항발전소를 통해 원자력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해준 가장 중요한 수단이 바로 간 나오토가 도입하려고 노력했던 자연에너지법이다. 그러므로 세간의 조롱에 굴하지 않고 손정의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 운동가들과 의기투합해 자연에너지법을 확립한 간 나오토는 소문과 달리 꽤 괜찮은 면이 있는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한국의 몇몇 정치인도 원자력 폐기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관심이 사라진 것 같다. 

원자력 폐기를 최종 결정한 독일과 원자력에 철퇴를 가했다가 30년 후 다시 부활시킨 스웨덴의 사례는 일반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이 기간에 스웨덴 시민들은 대항발전소 건설 운동을 게을리했고, 그 결과 관심이 점점 줄어들었던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원자력 폐기를 원한다면 시민들의 대항발전소 건설을 진작하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자력 반대 구호는 쏟아지겠지만 원자력은 더욱 융성해갈 것이고, 원자력 폐기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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